현대 만성질환 배후에 있는 장 미생물
'하나의 증후군'에서 '하나의 건강'으로
장 건강과 면역의 과학 (에머런 메이어 지음, 김홍표 옮김 / 궁리 / 368쪽 / 2만 2000원)

인간 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한 현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오래 살고 있다.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아프다. 심혈관계 질환부터 당뇨병, 대사 증후군, 자가면역 질환과 암, 간 질환, 우울증, 알츠하이머병 같은 만성질환이 놀라운 속도로 늘고 있다. 이런 21세기형 건강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우리 몸을 뇌-장-미생물 네트워크의 장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식습관을 통해 장에 사는 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고, 몸의 건강과 질병을 관리할 수 있다.

장은 단순히 소화 기관만이 아닌 전신 건강을 책임지는 만능 기관이다. 우리 몸 면역 세포의 70%와 자체 면역계, 호르몬을 생산해내는 분비계 및 신경계도 모두 장에 위치해 있다. '장 연결체(gut connectome)'라는 이 개념은 물질대사와 음식 섭취, 병원균으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과학계는 우리 몸을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로 보는 이 개념을 '뇌-장-미생물 네트워크' 연구로 확장해 주목하고 있다.

뇌와 장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전문가 중 한 명인 저자는 장 미생물군이 신체 건강에서 얼마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지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우리 몸이 뇌-장-미생물 축을 따라 양방향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몸의 건강 상태는 이들 사이에 어떤 신호를 주고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장 미생물과 다양한 신체 시스템 간 잘못된 교류가 일어나면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높아진다는 말이다.

저자는 많은 현대인들이 당뇨병, 심장병, 암 같은 만성 질환과 더불어 코로나19 같은 감염성 질환에 취약해지는 이유를 식단과 생활방식에서 찾았다. 이 책은 식단과 생활방식이 초래한 장 미생물군의 변화가 21세기 인류의 건강위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증거를 내세운다고 설명한다. 이에 과학 지식과 건강 정보를 함께 제시하며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 레피시도 소개한다.

서구식 식단은 장 미생물들에게 장기적인 스트레스를 남긴다. 설탕, 지방, 붉은 고기,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소화는 소장에서 거의 다 끝나고 만다. 배가 고픈 대장 미생물들은 장 점막의 다당류들에 눈독을 들이고, 만나지 말아야 할 소화기관의 면역 세포들과 장 미생물이 접촉하면서 네트워크 혼란이 생긴다.

저자는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 도달하는 미생물 위주의 식단이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여러 데이터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이섬유를 자주 섭취하면 짧은 사슬 지방산의 생산자인 프레보텔라 균이 늘어난다. 짧은 사슬 지방산은 장 건강의 중요한 요소로 장벽을 튼튼하게 하고, 프레보텔라와 같은 유익한 장 미생물이 줄어들면 신경계 건강이 나빠진다.

식생활 변화로 우리 몸에 사는 장 미생물의 종 다양성은 급격히 떨어졌다. 식물 곁에서 살아가는 토양 미생물이 처한 사정도 비슷하다. 인간이 재배하는 농산물의 종류가 확 줄어서다. 인간, 토양, 환경의 건강은 결국 미생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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