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선임기자
김재근 선임기자

"애들이 머리에 초록색 물을 들이고, 코까지 뚫고 다니는 세상이 될 줄이야… "

"말세야 말세.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 지 엄두가 안나."

2007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등장하는 노인들의 대사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이 우연히 갱들의 총격 현장에서 돈가방을 발견하여 갖고 도망하고, 킬러가 이를 추격하며, 보안관이 이 둘을 쫓는 내용이다.

킬러는 아무 이유도 없이 만나는 사람들을 냉혹하고 잔인하게 죽여버린다. 노인(보안관)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보안관은 살인도 막지 못하고 범인도 잡지 못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노인의 생활과 복지를 살뜰하게 챙겨주는 나라가 없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하도 많이 바뀌고 험악해져 노인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할만한 역할도 없다는 뜻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세상일까? 청년을 위한 나라일까?

70-90년대에 청춘을 보낸 기성세대는 이미 자리를 잘 잡았다. 주경야독하고 잔업까지 마다하지 않고 돈을 벌어 집도 마련했으며, 자식들을 대학에 보냈다. 산업화시대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 이들의 눈에 요즘 젊은 세대는 아주 못마땅하다.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 하고, 나이를 먹고도 부모에게 의지하려 한다. 결혼에도 관심이 없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조차 없다.

청년들이 보는 세상은 정반대다. 취업을 하려 해도 단기직과 알바만 있을 뿐이다. 청년 실업률이 6%라지만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실업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청년이 41만명이나 된다. 수도권은 집값이 너무 비싸 내 집을 갖는 게 불가능하다. 애를 낳고 기르는 것도 너무 힘들고, 사교육비가 매월 수십만원-수백만원에 이른다. 그야말로 '헬(지옥) 조선'이다.

요즘 청년 문제가 청년들 자신 때문인가? 분명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을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공시킨 게 기성세대이지만 일자리 부족과 천문학적인 집값 및 사교육비 문제를 초래한 것도 기성세대이다. 그런 기성세대가 여전히 정치적 정책적 결정권을 갖고 나라를 좌지우지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배부르니까 놀고 먹는다." "공장에라도 취직하라." "왜 결혼을 않느냐?"고 질타한다.

얼마전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발언에 전 세계인들이 실소한 적이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률(21.3%)로 고통을 겪는 중국 청년들에게 "농촌으로 가라"고 한 것이다. 자신이 홍위병 사태 때 시골로 쫓겨나 고생한 뒤 노력, 성공했던 사례를 상기시킨 것이다. MZ세대에게 씨도 먹히지 않는 얘기였다.

우리 기성세대도 대개 시진핑같은 꼰대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시대의 성공 논리와 의식에 사로잡혀 4차산업시대의 격랑에 힘들어하는 청년들의 현실과 고통을 외면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얼마 전 영국의 BBC방송이 과도한 집값과 사교육비, 긴 노동시간,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 '한국인이 멸종위기'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찬찬히 생각해보자. 누가 뭐래도 미래 대한민국을 끌고 갈 사람은 청년세대이다. 그들이 IT산업도 이끌고, 장사도 하고, 세금도 내고, 나라도 지키고, 기성세대에 의료서비스와 연금도 제공할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에 대해 무관심과 무책임,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청년을 위한 일자리와 주택 자체가 절대 부족한데 취업 면접비를 지원하고 전세자금을 빌려준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작금 대한민국의 최대 현안이 인구감소이고 그 중심에 청년문제가 놓여 있다. 임시방편이나 대증요법이 아니라 국가운영과 국정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손질과 대안이 시급하다.

청년을 위한 나라, 청년이 일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면 나라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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