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원 충남역사문화연 연구위원

백제의 역대 왕 가운데 근초고왕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만 고이왕에 대해서 아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 백제의 성장과정에서 주목되는 인물이 바로 제8대 고이왕(재위 234~286년)이다. 근초고왕이 백제의 팽창과 체제의 완성을 이룬 왕이었다면, 고이왕은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성장하는 데 있어 초석을 놓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이왕은 뛰어난 활 솜씨를 지닌 왕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뛰어난 무예를 소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한 54국 연맹체의 맹주국인 목지국을 병합한 것도 고이왕대의 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목지국의 병합이 온조왕 26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사실은 3세기 고이왕대의 사실이 소급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백제는 마한 54국의 맹주국으로서의 위상뿐만 아니라 마한 전체를 대표하는 국명으로 자리 잡게 됐던 것이다. 또한 고이왕은 중국 군현세력을 비롯해 말갈 등 주변국가들과의 군사적 대결에서 우세한 입장을 유지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역학관계 속에서 고이왕은 통치체제를 정비했다. 우선적으로 그는 경제정책을 추진했다. 백성들로 하여금 남부지역의 저습지를 개발하여 논으로 만들도록 했다. 당시 벼농사가 높은 수확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작물이었다는 점에서 재위 초기에는 민생경제를 개선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두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가뭄으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자 창고를 열어 구휼하고, 1년치의 세금을 면제해 주었다. 고이왕은 재위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각종 제도를 정비했다. 왕 27년에는 6좌평을 두어 국가의 업무를 나눠 분담시켰는데, 제일 먼저 왕의 명령을 알리고 보고하는 내신좌평이라는 관제를 뒀다. 이어 재정, 의례, 궁궐 수비, 형벌, 군사 등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두었다. 아울러 귀족들을 일정한 신분에 따라 관직에 등용하기 위해 필요한 관등이라고 하는 제도를 정비하고, 복식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국가의 통치기구와 관리등용에 대한 제도를 정비하고, 그에 필요한 법률도 정비하였다. 법률로는 관리로서 재물을 받거나 도둑질한 자는 장물의 3배를 징수하고 죽을 때까지 벼슬길에 나오지 못하도록 하였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가혹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국가의 토대를 세우기 위한 현실적인 법안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이왕의 정치운영을 보면, 백성들에게는 생활의 안정을 가져다주고, 국가를 운영하는 관리들에게는 엄격함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고이왕은 국가가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제도의 마련과 이를 운용하는 관리들의 위계질서와 청렴함이 기본이라는 인식을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백제가 고대국가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올바른 국정방향과 그것을 제도를 통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고이왕의 통치력을 통해 가능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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