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선교사촌은 근대화로 가는 과정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한남대 선교사촌은 근대화로 가는 과정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6·25이후 외국인 선교사들이 정착하면서 이들이 거주하기 위해 건설된 7동의 근대건축물이다. 중앙의 논을 중심으로 북측에 3동, 남측에 4동의 사택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북측의 가운데 건물은 William Alderman Linton(1891-1960/한국명:印敦)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인돈학술원`을 개원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그 당시 발행한 지도인`日淸韓三國大地圖`와 도자기 등의 많은 유물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이들 건물은 1950년대 우리나라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건축물로 서양인이 한국 건축양식을 도입하여 지은 보기 드문 예이다. 서구식의 평면에 합각지붕에 ㄷ자 형태로 배치해 전면에는 응접실과 서재를, 후면에는 4개의 침실을 두고 연결부분에 주방, 식당, 다용도실 등을 둔 전형적인 서구식 개념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나라 주거형태가 일제 강점기 일본식 건축양식이 들어오면서 변형된 건축양식이다. 한식의 경우 진입이 자유로웠지만 선교사촌 주택은 주집인 동선이 현관으로 모이도록 되어 있다. 이는 서구식 주택구조와도 닮아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선교사촌 주택은 우리나라가 근대화로 가는 과정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

거실에는 벽난로가 설치돼 있으며 나머지 방은 바닥배관으로 난방을 하고, 남서측에 조그만 선룸도 붙어 있다. 하지만 지붕틀은 왕대공을 약간 변형해 하현재가 이중으로 설치했으며 천장의 마감은 서까래를 노출시키고 석회석을 발라 마감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보수하면서 윤이 나는 두툼한 청기와를 얹고 창살까지 설치돼 있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김예지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북측의 가운데 건물은 인돈학술원으로 개원하여 사용하고 있다.
북측의 가운데 건물은 인돈학술원으로 개원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남대 선교사촌은 북측에 3동, 남측에 4동의 사택이 자리하고 있다
한남대 선교사촌은 북측에 3동, 남측에 4동의 사택이 자리하고 있다

김예지

관련기사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