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선정
일제를 살아가는 '해경'과 예술가 '이상'의 내적 갈등 표현
지은주 단장 "한국 문학이 세계적인 오페라로…유럽 진출 목표"

 

지난 9일 대전오페라단이 '이상의 날개'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초연했다. 대전오페라단 제공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 반대요 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밖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지난 9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선 100여 년 전 상실의 도시를 살아가는 한 청년의 모습이 재조명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대전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이상의 날개'가 첫 무대에 오른 것이다.

작품의 배경은 1930년 식민지 도시 경성. 조국을 잃은 상실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해경(이상의 본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자신과 똑 닮은 거울 속 이상을 향해 손짓하며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은 해경을 향해 "거울 밖에는 소리가 많소"라며 거울 밖의 현실 세계가 시끄럽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페라는 이상의 시 '거울'을 시작으로 실제 인물 해경과 현실과 단절된 시인 이상의 이야기를 음악과 연기로 풀어냈다. 그의 여러 작품 세계로 연결된 스토리텔링은 해경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날개를 돋는 모습을 표현했다.
 

창작 오페라 '이상의 날개'에서 금홍 역을 맡은 소프라노 양귀비가 아리아를 하고 있다. 대전오페라단 제공

작품은 해경의 '사랑'을 통해 처절한 시대상을 보여줬다.

폐병을 앓았던 해경은 요양 차 찾아간 황해도 배천온천에서 기생 '금홍'을 만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 그들은 함께 경성으로 돌아오지만, 어려운 생계에 다방 쪽방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견뎌낼 뿐이다. 오페라는 소설에서 금홍에게 핍박받았던 해경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했다. 금홍은 해경과 얇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남자와 뒹굴 수 밖에 없었고, 해경은 금홍의 폭력 속에서 귀를 틀어막으며 잠을 청한다.

무대에서 색이 있는 거라곤 해경의 각혈과 금홍의 붉은 원피스 뿐이다. 색채는 있지만 형태는 없는 무정형의 오브제. 이는 암울한 현실에 무너지는 작고 나약한 인간을 더 안타깝게 만드는 매개다.

대중은 시인인 동시에 건축가였던 이상을 비판한다. 신문에 실린 이상의 시 '오감도'를 보며 "총독부 건축기사가 글자를 짜깁기 했다"고 혹평한다. 그 속에서 해경과 이상은 갈등을 겪지만, 소통할 수는 없다.

그의 시 오감도는 본래 조감도를 뜻한다. 건축에서 위(새의 시점)에서 바라본 도면을 조감도라고 하는데, 그는 조(鳥)에서 한 획을 뺀 까마귀 오(烏)로 제목을 지었다. 이는 획이 하나 부족한 불완전한 단어로 당시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된다.
 

'이상의 날개'에서 해경이 동경을 찾은 모습. 대전오페라단 제공

화려한 무대 연출은 스토리텔링을 이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되기도 했다.

좁은 무대였지만 그의 시 '삼차각설계도'나 '건축무한유각체'를 통해 다양한 공간감을 줬다. 동경에 높은 건물이 켜켜이 쌓이는 모습은 육면체가 무한 증식하는 미디어아트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해경이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유치장에 갇힌 모습은 가로 세로로 뻗은 여러 직선 조명을 밝게 빛내 표현했다.

순사는 해경의 수첩을 빼앗아 들고 "군용 장화가 내 꿈의 백지를 더럽혀 놓았다", "탱크는 붉게 녹슬어 갔다"는 구절을 읽어 내려간다. 해경은 자신의 붉은 피로 쓴 시를 되찾으려 하지만 되려 농락만 당한다.

해경이 각혈을 토해내는데도 일본인들은 '열등한 유전자'를 살릴 생각이 없다. 이상은 그의 편한 마지막을 위해 대신 목을 움켜잡고, 합창단이 '최후'를 외치면서 막을 내린다.
 

동경을 찾은 이방인 해경(김광현 바리톤)은 복잡한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 대전오페라단 제공

이 작품은 이상의 시를 읽은 사람이 아니라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이상의 일대기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논리적이거나 인과적이지 않고, 시공간적인 개념을 탈피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에서 자주 쓰이는 기하학적인 묘사나 기호들이 무대에 등장하고, 자유로운 장면 전환은 몽환적이고 난해한 그의 시를 그대로 형상화했다.

대전오페라단은 이상의 날개 유럽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은주 단장은 "유럽에서 일할 때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왜 우리는 그들의 오페라를 원어 그대로 할 수밖에 없을까'였는데, 이걸 현실화할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상의 날개'인 것 같다"며 "현재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등 번역을 진행 중이고 그들과 계속 교섭 중이라 빠른 시일 내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울림을 주는 오페라를 만들어 이게 한국의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대전오페라단의 이번 '이상의 날개' 작품은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 해의 작품'에 선정, 1억 5000만 원의 창작비를 지원 받아 제작·공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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