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우리 주변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안경을 쓰고 이 세상을 보며 사는가에 따라 생각이나 행동이 결정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묵상하다가, 아주 오래전 우리 부부가 신혼기에 첫째 애를 갖게 됐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는 신혼기에 첫째를 갖게 됐다. 그러자 아내는 길을 가다가 습관처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이 하나 생겼다. 그곳은 바로 아기용품을 파는 곳이었다."아유~ 이렇게 작은 신을 어떻
가톨릭교회에서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일이 많다. 크게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살아있을 때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성인(聖人)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인들의 천상탄일을 축일 혹은 기념일로 지정해 그분들의 삶을 본받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다른 한 가지는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특별히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옥(煉獄)영혼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천국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이다. 두 가지의 차이점이 있지만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우리보다 먼저
현대사회를 정보화 사회라고 부른다. 이는 누가 더 많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는 뜻일 게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2016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알파고와 우리나라 최고 바둑기사인 이세돌 9단이 세기의 대국을 펼친 바 있다. 이때 바둑은 단순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둘 수 있는 것이 아닌 수가 무궁무진해 이세돌 9단의 우위를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였다.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 대국을 펼칠 때 다음 수를 스스로 창조해 내기보단 그동
성경은 창세기 처음부터 우리의 예배와 삶이 하나라고 말씀한다. 그 예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둘째 아들인 아벨의 예배는 받았지만 첫째인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의 예배가 거부된 것에 불만을 품은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창세기 4:6-7)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예배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예배 자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이 예배자로서 온전했는가를 질문하신 것이다.그렇다면 이 말씀에서 선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내가 나 스스로 선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쌀쌀한 기운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봄 내음이 이곳저곳에서 올라오고 있다.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봄비 소식은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봄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힘차게 출발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완연한 봄의 기운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과는 달리 각종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아직도 동장군의 기세가 한창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러 가지 사건 사고들과 참사, 우리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기세와 가스료 인상, 거기에 튀르키예의 지진으로 인한 많은 인명피해, 국민들의 삶의 질과는 무관하게 보이는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분류한다면 지구상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위치한 포유류 동물로 호모사피엔스라고 부른다. 이렇듯 생물학적으로는 사람도 포유류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들과 다르게 삶의 터전인 지구를 망가뜨리며 같은 종족끼리도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이 생존을 선택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생존이 아닌 사람의 본성 자체가 그런 것이라면 존재자체가 해가 되는 것은 아닌가?정말 우리 인간은 그런 존재인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원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
며칠 전, 구정 설을 맞이했다. 한 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 새벽부터 산을 찾기도 한다. 밝은 태양처럼 한 해가 밝게 빛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올해도 주변의 상황을 보면 그리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새로운 열매를 소망한다.성경 인물들 가운데 다윗은 많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그 어려움을 이기는 삶을 살았다. 그는 고난을 이기고 나서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시편 62:1)라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이 만난 고난을
이틀 전 천주교 대전교구의 큰 기쁨이 있었다. 착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새 사제(신부)가 탄생했다. 하느님께서 당신 교회에 일꾼을 주셔서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제를 주셨으니 감사할 일이다.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은 천주교 신부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것이다.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10년의 과정이 필요하다. 교과 과정으로만 본다면 학부 4년, 대학원 2년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부 과정 중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하고 남은 기간 선교체험이나 복지시설 등에서 미래
새해가 되면 우리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으로 새해 인사를 나눈다. 이렇게 서로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은 어쩌면 올 한 해가 행복한 1년이 되길 소망하는 우리의 희망 언어일 것이다.이렇듯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나라 헌법 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며 행복추구권을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과연 어떤 상태가 행복한 삶일까?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성공하면 행복할까? 부자가 되면 행복할까?
우리는 아무리 울지 않아도, 착한 일을 많이 한다 해도, 산타가 주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늘 성탄 때가 되면 산타를 기다린다. 불룩한 뱃살에 덥수룩한 수염, 그리고 빨간 옷을 입은 산타의 모습은 언제나 정겹다. 요즘은 어린아이조차 산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산타 할아버지는 교회의 성인 중 한 명을 기원으로 한다.3세기, 지금의 터키 지방인 미라의 대주교였던 성 니콜라오이다. 성인은 대부호였던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전 재산을 자선 사업에 바치고 사제가 되고, 나중에 주교가 된 후 그의
상반산성 물극필반이란 말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주역, 태극을 비롯한 음양 사상에도 나타나는 동양철학의 핵심이다. 상반상성은 서로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이 모두 같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이이다. 물극필반은 모순되고 대립되는 쌍방은 언제나 자신의 반대편으로 진화한다는 가치론적 관점이다. 두 말을 모두 합하면 공존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있음이 없으면 없음도 없고, 높음이 없으면 낮음도 없으며 따뜻함이 없으면 차가움도 없고,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없다. 이 말은 모두가 상대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큰 것이 있다는 말은 작
우리는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 이웃을 잘 만나지 못하면 애로가 많다. 윗집에서 밤늦은 시간까지 청소기를 돌린다든지, 큰소리가 난다든지 해서 간혹 신문에 이야기가 나온다.어느 칼럼을 읽다 보니 어느 동네에는 길을 두고 반대쪽에는 중국 교포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말이면 친구들과 아침 6-7시까지 밤이 새도록 놀면서 큰소리를 질러 주변 사람들이 아침잠을 설친다는 것이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웃을 잘못 만났어" 한다는 것이다.요즘 우리 사회는 이웃으로 인한 파동으로 한바탕 술렁이고 있다. 이웃을 잘 못 만나면 내 삶이 어떻
"새해 더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2022년이 아직 한 달 넘게 남아 있는데, 무슨 새해 인사를 벌써 하는지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다.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탄 전 4주간의 시기를 대림시기라 하여 그 첫날을 한해의 시작으로 삼고 있다. 올해는 11월 27일이 대림 제1주일이면서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날이다.'대림'이라는 단어는 '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Adven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대림 시기이다.그러면
얼마 전 (사)내포문화숲길 회원들과 제주도 올레길을 걸은 일이 있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있는 제주도는 돌담을 낀 골목마다 센 바람이 불었고, 살갗에 밤 가시가 닿는 것처럼 섬뜩섬뜩했다. 아스팔트에서 바람을 안고 걸어야 할 때는 몸을 돌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고 싶을 정도로 한 발짝 옮기기도 힘들었다. 회원 중에는 걸음이 빠른 분도 있었지만 걸음이 느린 분도 많았는데, 며칠에 거쳐 긴 구간을 걷다 보니 중간에 포기하는 분도 더러 있었다. 길은 비교적 평탄했지만, 가끔은 산을 오르는 구간과 현무암의 돌 구간도 나와 그곳을 지날 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매일 새로운 소식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화재와 수해, 한파와 태풍, 전쟁과 경제 위기에 대한 소식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우리는 가끔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졌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듣는다.2022년 6월 16일에도 25t의 배가 전복이 됐다. 그후 해경의 도움으로 선원이 구조됐다는 이야기가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생명을 구조하는 119 소방대원과 길을 가다 쓰러져 있는 사람을 신고하고 구조하는 일은 선한 사마리아인
몇 주 전, 저녁 약속이 있어 퇴근길 차량 행렬에 합류한 적이 있다. 어둠이 살짝 깔리기 시작했고 약간의 정체를 벗어나 외곽도로 향하던 중 중앙분리대 화단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달려드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바로 차량에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 룸미러를 통해 보인 무언가는 쿵 하면서 굴러 떨어지는 작은 고라니였다. 생애 첫 교통사고를 내는 순간이었다. 교통의 흐름상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고 다음 신호를 지나 길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긴 거리를 가기엔 어려운 상태여서 정중히 약속을 취소하고
얼마 전, 서산에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40대 여성이 경찰에 4번이나 신고하고,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까지 받았지만 대낮에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급기야, 피해자의 아들이 "엄마를 살해한 아버지가 죗값을 치르게 해 달라"며 엄벌을 촉구하는 청원 글을 대통령실 등에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녀가 그동안 겪었을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우리가 겪는 상당수의 고통은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네 몸과 같이 네 이웃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무엇보다 네 이웃을 가족같이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웃의 허물이 보이기 때문일지 모른다.하지만 베드로는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7-8) 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
조금 긴 시간 동안 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외출하고 집에 돌아온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강아지가 나를 반기며 폴짝폴짝 뛰다가 그만 나에게 꼬리를 밟혔고 강아지는 '깨갱' 하고 아픈 신음 소리를 냈다. 깜짝 놀란 나는 강아지를 안으며 '빠흐동'(pardon, 미안하다는 뜻의 프랑스어)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국의 의지가 처음 생긴 때였는데 그것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사과의 표현에 물들어 있음에 대한 자기 반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그 경험 때문에 바로 돌아오지는 않았고
대나무는 매서운 추위에도 그 푸름을 잃지 않기 때문에 절개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래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고한 성격을 '대쪽 같은 성품'이라한다.공직자는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말자. 아무리 덩치가 크고 권력의 중심에선 사람도 웅장한 산속에 들어가면 너무 작아 찾기 힘 든다. 이렇게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작은 존재다.우리가 삼독(貪瞋癡)만 놔버리면 민주주의, 남북통일, 세계평화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 사리사욕만 버리면 황금덩어리나 미인을 봐도 취할 마음이 없어 걸릴게 없다. 돈만 보면 얼음판에 넘어진 황소 눈이 되고, 욕심이 도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