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조 금강대학교 총장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곳이다. 문맹률도 낮고, 대학 진학률도 높다. 대학 진학률만 따지면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고 이스라엘과 비슷한 수준이다.

사실 한국이 식민시대와 6·25전쟁을 치른 참담한 최빈국에서 오늘의 영화를 누리기까지는 이 교육열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밀도는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의 힘이다.

강남의 집값이 오르고 사교육비가 문제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교육 열풍 때문이다. 다만 지나친 입시 위주, 암기 위주의 교육 풍토는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다. 중학 교육은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서, 고등학교 교육은 대학을 가려는 관문일 따름이다.

요즘 대학은 또 취업 때문에 난리이다. 2학년만 되면 전공은 팽개친 채, 고시반, 영어학습반, 취업특강 등을 기웃거린다. 우리나라 교육의 절정은 고3이다. 사실 나도 제일 실력이 출중했던 때는 고3 때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때를 정점으로 해서 공부는 실종하고 만다. 성인들은 연애소설 한 권 읽는 것도 기피하면서 학생들을 향해서만 공부 타령이다.

원래 공부라는 낱말은 불교 용어이다. 주공부(做功夫) 혹은 공부라는 말은 도를 깨우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이다. 고려 때에는 승려들에게도 과거에 해당하는 승시(僧試)를 치렀는데, 그 때 주로 출제된 문제들도 공부십절목(功夫十節目), 무심공부 등이 있다. 즉 우주와 생명의 실상을 깨닫는 힘, 마음을 관조하는 수행이 바로 공부의 요체였다. 서양말로 공부, 학문을 뜻하는 용어는 스콜라(scholar)이다. 이 말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의 `여유`라는 뜻에서 연원한다. 그래서 플라톤의 아카데미아(Academia)에 입학할 때의 필수 과목은 수학, 음악, 체육이었다. 수학은 논리적 향상을 도모하고, 음악은 영혼의 안정을 이룬다. 체육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플라톤은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설파하였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화두는 노후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수명 연장에 따른 여가 선용의 문제, 황혼이혼 등에 의한 정신적 방황, 절망감 등은 개인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이다. 조기 퇴직이 봇물을 이루고 경제적 곤경을 겪는 노인세대가 등장한다. 또 한편으로는 경제적 여유를 지닌 실버계층이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공부`이다. 지금 말하는 공부는 꼭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시험에 패스하고, 자격증을 딴다는 의미는 아니다.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공부, 세속의 풍파에 시달리다가 놓쳐 버린 공부 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공부에는 꼭 돈과 시간의 여유가 필요하다. 나의 내면을 관조하는 여유, 가다가 지치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태도이다. 학교 교육에는 언제나 시작과 끝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인생 대학에는 졸업이 없다. 그동안의 우리 인생은 지나치게 외부적이고 물질적인 면에서만 평가되어 왔다. 사회에서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느냐 하는 점, 돈은 얼마나 모았느냐 하는 것 등이 인생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만족이 인생의 성패를 판가름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폐 끼치고, 상처 주고, 짓밟으면서 전투적으로 살아온 인생이라면, 그것은 부끄러운 과거이다. 그러나 베풀고, 용서하면서 늘 스스로를 뉘우쳐 온 인생이었다면 그것은 바람직스럽다. 음미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때로는 긴 밤을 시름에 젖어보기도 하고, 서산에 지는 고운 노을에 마음을 빼앗겨 보기도 한다. 가정이나 사회 문제만이 아닌, 우주의 비의(秘意), 삶의 아이러니를 느껴보는 것도 만년의 여유가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젊음을 예찬하고, 늙고 사라지는 것을 못 견뎌 하는 듯싶다. 그러나 영고성쇠는 모든 생명의 숙명이다.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다소곳이 체념하는 것도 지혜의 방편이다. 나이 먹는 것은 서글픈 일이기는 하다. 행동이 어눌하고, 눈이 가물거려서 집중하기도 어렵다. 건강이 시원찮으니 정신세계 또한 우울해진다. 그러나 나이 먹으면서 좋은 일도 있다. 우선 삶의 안목이 높아진다. 자그마한 풀 한 포기, 미물의 움직임 속에서도 생명의 고동을 들을 수 있다. 격렬한 인생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편한 일인지 몰랐다. 스산한 나목(裸木)이 어느새 봄옷을 갈아입고 있다. 산은 말없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흰 구름은 천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봄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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