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영 대전대 토목공학과 교수

자연이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스스로 그러하다`라는 의미이다.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이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스스로 존재하거나 저절로 이루어지는 우주의 모든 존재나 상태를 말한다. 보다 엄밀히 말해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아니하고 저절로 생겨난 산이나 강, 바다, 식물 및 동물 따위의 `존재 자체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지리적·지질적 환경 상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은 원래부터 또는 신의 창조로써 존재하는,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존재 자체 또는 그것들이 이루는 상태`이다. 그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개체인 우리에게는 스스로 존재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자연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또한 그 변화는 나름대로의 엄격한 질서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 예컨대 우리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계절적 변화와 같은 시간적 반복으로 구성된 자연의 질서 같은 것이다. 때때로 지진과 이에 따른 쓰나미(津波), 화산폭발, 홍수 등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자연현상은 매우 불규칙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탓에 자연은 무질서한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은 균형(均衡)이라는 원칙 하에서 질서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예가 있다.

땅 속 깊은 곳에서는 높은 압력과 열을 가진 고체가 지각과 서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각의 어느 한 곳에서 균형을 상실하면 그 지점에서 마그마가 형성되는데, 이 마그마는 다시 균형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상으로 분출되어 화산을 만든다. 결국 화산 활동은 지구가 스스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질서 체계를 운영하는 움직임의 일환이며 화산은 그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더 들어보자.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엘니뇨 현상 또는 라니냐 현상은 해양의 수온이 평균치보다 0.5℃ 이상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을 말한다. 엘니뇨나 라니냐 현상에 따라 대규모 홍수나 가뭄, 한파 등이 주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대규모 홍수 등도 정상상태(균형)를 벗어난 자연현상으로부터 다시 정상상태(균형)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는 바벨탑에 관한 일화가 실려 있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 바벨탑 건설은 결국 혼돈 속에서 막을 내렸고, 탑을 세우고자 했던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자연의 질서에 무모하게 도전한 결과 무력한 원래의 모습으로 와해된 것이다.

한동안 주춤했던 과학(진화론)과 종교(창조론) 사이의 학문적 논쟁이 최근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해묵은 논란이지만, 필자의 견해로는, 과학은 인간의 생성(창조론)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고, 종교는 과학(진화론)을 설득할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은 객관적 근거와 재현가능성을 전제로 하며, 종교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종교적 신념(창조론)을 과학적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한 과학이 종교를 설득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종교가 과학적 사실(진화론)을 과학적으로 충분히 반박할 수 없는 한 종교가 과학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과학적 증명과 믿음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영역 사이에서 중요한 핵심은 종교와 과학을 대하는 우리의 균형 잡힌 태도이다.

과학기술자들은 지구를 인간이 생존하기에 유리한 방향으로 극복해보려는 인위적인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부분적인 성과도 분명하나 소위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 또한 크다. 역사가 이미 증명한 바는 과학에 의해 재창조되는 인위적 자연이 본래 자연의 균형을 해치게 되면 과학기술도 무너지게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며, 이로써 지구는 그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하여 `자연의 질서 체계`를 가동하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 시기가 도래하면 인간을 포함한, 지구에 발붙여 사는 모든 생명체들의 존재가 크게 흐트러질 우려가 크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4대강 사업과 금강 하굿둑 문제도 균형을 지향하는 자연의 거시적 질서의 면에서 보아야 한다.

과학의 성과에 도취한 인간의 오만을 노자가 `도덕경`에서 제시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기본철학으로 삼아 치유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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