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횡포 견제·소수의 이익대변 여야간 소통이 갈등을 푸는 지름길 타협·합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필요

국회는 법률을 만드는 곳이다. 법률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만 의사봉을 두드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의를 시작하거나 종료할 때, 안건을 상정할 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때 의사봉을 세 번 친다. 의사봉 3타의 역사적 최초 시점은 잘 모르지만 서양 문물에 영향을 받은 것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의사봉을 왜 세 번 치는 것일까. 국회법이나 국회규칙 어디에도 세 번을 쳐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특별한 규정이 없음에도 의사봉을 세 번 치는 이유는 첫째, 어떤 안건이 통과되었음을, 둘째, 통과된 안건에 이의가 없음을, 셋째, 통과된 안건에 대해 지킬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세 번을 통한 완결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리 속담에 삼세번에 득한다는 말이 있다. 한 번은 밋밋하고, 두 번은 왠지 완성된 것 같지 않고, 세 번은 쳐야 뭔가 제대로 된 것 같아서 세 번 치는지도 모르겠다. 삼세판처럼 말이다.

의사봉 3타와 관련해 회자되는 이야기가 있다. 국회에서 어떤 위원장이 전문위원이 써 준 시나리오를 그대로 읽는 바람에 "의사봉 3타(打)"라는 표시를 의사봉을 두드리는 대신 말로 해버려 웃음거리가 된 일이 있었다(경향신문, 1981.10.3). 또한 국회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는 순간 봉두(棒頭) 부분이 손잡이에서 빠져 나가 있음을 발견하고 고장난 의사봉을 고친 다음에 세 차례 타봉한 사례도 있었다(동아일보, 1988.7.8). 의사봉 3타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며, 고장난 채로 타봉하는 것도 아니었다. 의사봉 3타는 관례였고, 지켜야 할 절차로 인식되었다.

다수의 여당이 소수의 야당의 반대를 무릎 쓰고 자신들에 유리한 안을 통과시킬 때도 의사봉 3타는 시행되었다. 의장석이 아닌 기자석이나 화장실, 복도에서 안건을 통과시킬 때에도 의사봉 3타는 시행되었고, 의사봉이 있는 단상을 점거하기 위한 몸싸움은 의사봉 3타가 갖는 정치적 효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과거 후진적 악습을 통해 적정 장소에서 합법적으로 의사봉을 타봉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됨에 따라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국회법을 개정하였다.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일종의 몸싸움방지법을 도입한 것이다.

현행 국회법에서는 여야 합의가 없는 한 법안 처리가 어렵다. 과거에는 소수 야당이 반대해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법안을 직권 상정해 단독으로 안건을 처리했다. 직권 상정은 1973년에 도입된 제도로 16대 국회에서 6차례, 17대 국회에서 29차례, 18대 국회에서는 97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직권 상정에 따른 후진적 폐해로 말미암아 국회법을 개정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했다. 국회법에서는 직권상정의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또한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본회에서 무제한 토론(filibuster, 의사진행방행제도)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 중단 결의가 없는 한 회기 종료 때까지 토론을 이어갈 수 있다.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 내 다수당이라도 의석수가 180석에 미치지 못하면 예산안을 제외한 법안의 강행 처리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요즘 직권 상정과 관련해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다. 과반수를 획득한 여당이 법안을 독자적으로 통과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국회법을 오히려 `망국법`이라 칭하고 있다. 그러나 다수당의 횡포를 억제하고 소수의 이익 대변을 통해 상호 협력하라는 법이 망국법일리는 없다. 여야 간의 합의 정신이 없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법을 손쉽게 개정하기보다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더 쉬운 해결방안이다. 여야 간의 숙의, 의안에 대한 최종 타협 및 합의, 의사봉 3타의 완결적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원구환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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