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 불만들 억제 '불화' 초래 지혜·평화로운 표출문화 조성 합의·다당제·정부차원 해법 모색 소수의견 존중 진지한 노력 필요

칼럼을 준비하면서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를 짚어 보고 더불어 이 문제에 대해 행정학자가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고 싶었다. 여러 날 고심 끝에 도달한 주제가 바로 한국 사회의 갈등문제이다. 갈등의 의미는 관심 있는 무엇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못하는 것, 즉 불화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갈등을 쌓되 이것의 분출은 대단히 억제하는 문화 속에 살아왔다. 게다가 가족주의 문화와 권위주의 문화는 이것이 내포한 위계적 성격으로 인해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불만표출을 억누르는 기능을 수행해 왔다. 이러한 측면들은 사회적 갈등을 표출하여 해결하기보다 가라앉히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사회의 바탕이 달라지면서 문화도 변하기 마련이다.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나누어야 할 사회적 자원의 양을 크게 늘렸다. 산업화가 성숙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이것은 생활 속의 민주주의도 자라나게 하였다. 급속히 진행된 도시화는 개인주의를 가속화시켰다. 이러한 사실들은 한국사회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으로 늘어난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놓고 전에 없던 큰 불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회적 자원의 분배를 둘러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사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사회복지의 수준과 재원의 조달을 둘러싼 갈등, 공적 연금의 개혁을 둘러싼 갈등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제 한국사회의 갈등양상은 과거처럼 갈등을 마음속에 침전시키는 방식을 택하기 보다는 적극적으로 갈등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그간 가족주의, 정적인간주의, 그리고 권위주의 문화가 갈등의 표출을 억제해 왔다면, 새로 싹튼 민주주의, 개인주의 문화는 마음속에 쌓인 불화를 밖으로 쉽게 드러내도록 돕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산업화가 급속히 이루어진 탓에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아직 성숙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제 갈등을 쉽게 자기 밖으로 드러내 놓는 단계까지는 왔지만 이것을 지혜롭고 평화롭게 풀어가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는 못하였다.

갈등해소에 대한 답들은 수없이 많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것은 정치행정적 갈등해결 방안들이다. 먼저, 우리 사회는 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합의제 정치제도와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수대표제가 한 표라도 많은 승자가 가치자원을 독식하는 방식이라면, 합의제는 소수파의 몫을 존중해 주는 제도이다. 다수대표제만으로 중요 정책을 결정한다면 소수는 배제되고 이에 소수는 격렬히 저항하면서 사회갈등이 증폭된다. 그러므로 소수파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정치제도의 설계가 필요하다. 우리도 주를 동등하게 대표하는 미국의 상원처럼 시도를 동등하게 대표하는 상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의 정당체계도 변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권위주의 시대를 경험하면서 반민주(독재) -민주 대결구도가 정당체제에 반영되어 여당과 거대 야당으로 구성되는 양당제가 거의 굳어지다시피 하였다. 정당의 기능은 사회의 이익을 정책으로 결집하는 것이며, 다양한 정당이 있으면 다양한 사회이익이 결집되어 제도정치권에서 그것의 상호 조정이 가능하다. 따라서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사회갈등 해소에 효과적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다당제하에서 필요한 경우 정치세력들은 정당간의 연합(연정)을 통하여 갈등하는 사회이익을 조정하고 타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것은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에 정부관료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개발연대에 정부관료제가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면 이제는 사회갈등 해소를 위해 전문가적 노력을 쏟을 때이다. 인간 사회에서 갈등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무이다. 우리가 단순히 싸움구경꾼에 머물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주명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보도 및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