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늘 천안아산취재본부 기자
박하늘 천안아산취재본부 기자

지난 11월, A씨가 사는 오피스텔에 단전 예고장이 붙었다. 수도도 끊긴다고 했다. A씨 집 문 앞에는 '보증금 미반환 전세사기 정보 공유'라고 쓰여진 A4용지 한 장이 꽂혀있었다. 종이에는 오픈채팅방 QR코드가 새겨져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채팅방에 들어가니 이미 세입자 십수명이 오피스텔 임대관리업체에게 수천만원 씩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해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다.

A씨는 무료법률상담 변호사를 찾아갔다. "보증금 3000만원 없으면 죽어요?" 변호사의 첫 마디였다. 이런 종류의 사건을 많이 맡아 왔으며 조직적·계획적인 범죄라 이미 돈은 은닉했을 것이기에 받아내기 어렵다는 말이 한마디로 압축됐다. 4년 전 천안 두정동 일대에서 벌어졌던 오피스텔 보증금 사기 사건의 주범은 돈을 잘 숨겨두고 형량만 채우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오픈채팅방에 달린 '고소인이 많을수록 로펌 수임료가 저렴해진다'는 공지를 읽었다. A씨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졌다. 변호사에게 A씨의 아픔은 그저 '일'이었다.

나름 사회 경험이 있다고 자부했던 A씨는 신문에서나 봤던 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부동산에서 계약했던 오피스텔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무력감에 눈물만 흘렸다.

세간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왜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냐', '믿을 만한 공인중개사를 찾았어야 하지 않냐', '왜 의심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피해자의 잘못인 양 다그친다.

보통 사람의 삶은 모든 것을 '꼼꼼히' 따져보며 선택할 만큼 여유롭지 않다. 타지로 취직하거나 인사발령이 나면 하루 빨리 살 집을 알아보고 출근준비를 해야 하는 게 보통 사람의 삶이다.

3000만원, 누군가에겐 죽고 싶어질 만큼 큰 돈이다. 누군가에겐 '일'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겐 '삶'이다.

A씨의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법과 제도, 시스템에 순수하게 의탁한 그 믿음이 잘못일까.

대전에서 50억대 전세사기를 치고 해외로 도피한 피의자가 자신의 사진을 공개한 유튜버를 되레 협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A씨, 그리고 보통 사람의 바람은 죄의 대가는 응당 받고 빼앗긴 돈은 고스란히 돌려 받는 상식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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