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과 같이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하자는 숭고한 취지의 법률과 소위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하여 사회공헌에 기여하는 문화메세나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사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문화예술계가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설상가상으로 최순실 사건이 터지면서 기업의 문화메세나를 통한 협찬이나 후원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문화단체와 공연예술업계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5만 원이 넘는 공연 관람권을 직무 관련성이 있는 공직자, 언론인, 사립학교 교원과 배우자에게 선물하면 과태료를 물도록 되어 있다. 오페라나 뮤지컬, 클래식과 같은 대형 공연은 기업 후원이나 단체 관람권 구매가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이러한 공연 관람권은 대부분 5만 원을 넘기 때문에 기업이 초대권으로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정부정책이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의 문화예술 협찬이나 후원제도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부터 기업들에게 거래처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소위 문화 접대비를 세법상 비용으로 인정해 주면서 문화소비 활성화에 기여해 달라는 시그널을 보낸 것인데, 김영란법이 의도하지 않게 이 같은 장려책과는 정반대로 작동해 버린 셈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연 후원 자체는 김영란법에 위배되지 않는 데도 불구하고, 기업이 일단 협찬이나 후원 자체를 꺼리거나 기피하는 데 있다. 공연관람권은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하기 위한 기념품이나 홍보용품에 해당하기 때문에 김영란법 상 위법은 아니다. 다만, 공짜 관람권이 공직자 등 특정인이나 직군에게 선물로 제공될 때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수학으로 말하면 작은 부분집합에 해당되는 사안을 마치 전체집합에 해당한다고 얘기하는 형국이다.

세종시문화재단 출범이후 많은 문화예술단체 인사들과 만날 기회를 가졌다. 문화기관 운영의 롤모델로 자타가 인정하는 서울 예술의전당 고학찬 사장과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금난새 선생님과 같은 적지 않은 분들이 김영란법이 문화메세나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2017년 2월 현재 국회에는 11개의 김영란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내용도 농축수산물을 적용 대상에서 아예 빼거나 예외를 주는 법안, 명절에만 예외로 하자는 법안, 적용을 몇 년간 더 유예하자는 법안 등 다양하다. 이러한 개정안은 김영란법 시행과정에서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 같다.

차제에 우리 문화예술계도 김영란법의 기본정신과 취지를 살려나가면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문화메세나에 관한 합리적인 예외조항이 만들어지도록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국·공립 문화예술기관과 단체,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가 공통의 의견을 모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문화메세나 활성화를 위한 법과 제도적인 정책대안 모색과는 별개로 현 상황을 시급하게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들이 문화메세나가 갖는 본래의 순기능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대기업이 문화메세나를 당장 확대할 여유가 없다면 지역 연고가 있는 중견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의 일부로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문화예술 수요를 충족시키는 문화메세나 활동을 보다 늘려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지역 연고기업과 지역주민이 상생하게 되고, 지자체 문화재단이 중개자 역할을 원활히 한다면 `상생의 지역문화생태계`가 조기에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인병택 세종시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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