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끝났다. 고속도로 정체도 풀리고 모두들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오가는 길은 힘겨웠지만 친척들이 함께 모인 시간이 나쁘지 않다. 조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기도 하고 어머니의 늙어가는 모습을 접하며 콧날이 시큰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이렇게 되묻는다. 왜 우리는 명절만 되면 힘들게 친척들이 함께 모이려고 애를 쓸까?

개인주의적 전통이 강한 서구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처럼 온 국민들이 명절마다 동시에 움직이면서까지 친척들을 함께 만나려고 하는 것은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인 행태이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야 한다면 각자 생업 스케줄에 맞춰 일 년 동안 분산해서 소규모로 만나는 것이 더욱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을 비롯하여 유교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이런 합리적 대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전히 설날과 추석이라는 양대 명절만 되면 친척들이 모두 모여 우리가 한 핏줄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끈끈하게 확인받고 싶어 한다.

생물학자 윌리암 해밀턴은 친족이 함께 모이는 우리의 풍습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준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피를 나눈 친족들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낀다. 이러한 유대감은 단순히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친족이 장래의 언젠가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을 예상한 이해타산의 결과도 아니다. 유전자에서 비롯된 자연스런 생리적 마음이다.

해밀턴은 이러한 유대감을 숫자로 계량화했다. 그가 제시한 유대감의 근거는 유전적 근연도(genetic relatedness)이다. 유전적 근연도란 두 사람 사이에 이타적 행동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를 개체군의 평균보다 더 많이 공유하고 있을 확률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1의 유전적 근연도를 가진다. 반면 자기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른 사람과의 유전적 근연도는 0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당연히 전력을 다해 해동하고 타인을 위해서는 어지간해서는 선행을 베풀지 않는다.

반면 친족들 사이의 유전적 근연도는 1과 0 사이에 있다. 부모와 자식 간에는 2분의 1의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다. 형제자매도 역시 2분의 1의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정확히 절반 물려준다. 자신의 유전자 복제본을 가질 확률이 부모와 자식 사이에 50%이므로 유전적 근연도는 2분의 1로 표현된다. 형제자매들 역시 유전자 복제본을 50% 공유한다. 조부모와 손주 사이, 삼촌과 조카 사이에는 4분의 1의 근연도를 가지며 사촌 사이에는 8분의 1의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다. 사람은 이러한 유전적 근연도와 관련하여 상대에게 이타적 행위를 한다.

설날에는 친척들이 모두 모여서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주고받는다. 삼촌은 조카에게 세뱃돈을 주면서 아까워하지 않는다. 삼촌이 만약 조카에게 1만 원의 세뱃돈을 준다고 하자. 그렇다면 삼촌 입장에서는 1만 원이 손해다. 반면 삼촌과 4분의 1의 유전적 근연도를 갖는 조카의 입장에선 1만 원이 이득이다. 이때 조카가 1만 원으로 얻는 이득이 삼촌이 1만 원을 줌으로써 보게 되는 손해보다 4배 이상 크다면 삼촌 입장에서는 세뱃돈을 주더라도 아깝지 않다. 조카에게 세뱃돈을 건네는 삼촌의 마음에는 이러한 유전적 근연도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작용하고 있다.

친족들 사이의 유대감은 진화 과정을 거쳐 인간이 지니게 된 자연스런 감정이다. 이러한 자연스런 감정이 서구인들이라고 왜 없겠는가? 허나 서구인들은 집단보다 개인을 중시하는 전통이 강하다. 이모와 고모를 구분하는 명칭 등 친족을 지칭하는 명칭도 분화되지 않았으며 4촌의 범위를 넘는 친족에 대해서는 호칭 자체가 아예 없다.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친족주의를 뜻하는 `네포티즘(nepotism)`에는 아무런 긍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명절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의 친족문화는 단순한 문화적 현상이 아니다. 비록 많은 비용과 수고가 들더라도 없어질 수도 없고 없애서도 안 되는 진화의 산물이다. 세뱃돈은 피를 나눈 친척들이 서로 유전적 근연도로 얽혀있음을 확인하는 진화적 예식이다.

채석용 대전대학교 H-LAC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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