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파생력

김홍중 지음/ 문학동네/ 576쪽/ 2만 2000원

21세기 들어 한국 사회에는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민주주의의 후퇴,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 등 삶의 안전을 위협하는 각종 재난과 사건들이 닥쳐오고 있다. 세월호 침몰과 백남기 농민 사망 등 무엇인가 근본적인 것이 해체되고 소멸해가고 있다는 시대적 감각이 우리 삶의 일상을 근원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가 혹은 사회의 마음이 꿈꿔온 모든 것 들이 무너져 내리는 파상(破像)의 시대. 사람들은 기존의 가치와 열망의 체계들이 충격적으로 와해되는 체험 앞에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또 미국을 공황 상태에 빠뜨린 9·11 테러와 3·11 동일본 대진재(大震災) 등 파국적으로 엄습해오는 재난과 위협이 우리 시대를 특징 짓는 어지러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사회학적 파상력`은 이러한 파상의 시대가 문명사적으로 대변동의 시기이며, 대안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의 꿈들이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며 문제화되는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C. W. 밀스가 `사회학적 상상력`(1959)에서 보여준 낙관적 전망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 우리 시대의 상상력은 기업에서 훈련시키고 자기계발 속에서 육성되고 실현되는 목적합리적 행위의 한 유형으로 전락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 바우만의 액체근대성, 기든스의 재귀적 근대, 보드리야르의 사회적인 것의 종언 등 여러 학자들의 진단이 내려진 21세기의 맥락에서 보면 밀스가 약속했던 `상상력(想像力)`은 더 이상의미를 갖지 못한다.

상상력을 강조하고 거기에 내포된 인간의 창조력을 중시하는 것은 불가피하게 미래를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그래서 현실의 고통과 비참을 적확하게 포착할 수 없다. 상상력이 아닌 파상력(破像力)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특히 저자는 우리 시대가 지난 100여 년간 사람들이 격렬하게 품었던 꿈들의 성취와 실패, 기억과 망각, 매혹과 환멸의 복잡다단한 퇴적층이자 미래를 당겨오는 다수의 몽상구성체들이 격돌하는 전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제1 부 `몽상과 각성`에 실린 글들은 집합적 몽상이 허물어지면서 드러난 리얼리티의 참혹한 민낯에 대한 예민한 증언과 관찰들이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며 핵 이후의 시대를 사는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 묻는다. 제2 부는 `생존과 탈존`이라는 제목 아래 `서바이벌`이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세계의 비참을 다룬다. `저항`, `반항`, `자유`, `도전`의 상징이었던 이전 세대의 청년들과 달리 현재의 청년세대들은 `생존`을 하나의 `주의`로 삼아버렸다.

제 3부는 이러한 연구들의 바탕을 이루는 문화사회학의 이론적 점검에 할애되고 있다. 막스 베버의 `이해사회학`을 자신이 시도하는 `마음의 사회학`의 범례로 내세우면서, 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상호침투에 주목한 여러 이론들을 통합해 `마음`에 대한 이론을 심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과거의 꿈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꿈 사이의 긴 환멸을 있는 그대로 겪어내는 힘. 그리고 그 파편들 속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파상력을 통해 어두운 바다와 같은 세계에서 희미하게 부서지는 미광 너머로 날아가는 새처럼, 새로운 세계를 다시 만들어가기를 희망해 본다.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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