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송민순 회고록' 덫에 걸려있는 형국이다. 대립 구도부터 불리해지고 있다. 여권이 벼르듯 문 전 대표에게 진실을 밝히라며 압박하는 흐름에 제 3당인 국민의당도 부분적으로 동조하며 점차 각을 세우고 있다. 회고록 저자인 송 전 외교부 장관도 여전히 단호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다. "30 몇 년 공직에 있던 사람이 소설같이 썼겠느냐"며 회고록 내용이 사실임을 거듭 천명했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는 핵심 사실관계를 비켜가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당시를 잘 아는 분들에게 물어보라며 남 얘기하듯 한 것도 그렇고, 어제는 "나를 두려워해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나"라고 짐짓 여유를 보였지만 자연스럽지 않다. 이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이른바 '라쇼몽 효과'에 빗대기도 했다. 그는 "라쇼몽이라는 영화가 일본 영화인데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 그때 관계되었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는 기억이 다 다른 것"이라는 논리를 폈는데 문제의 회고록 내용이 진실이 아님을 은연중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결국 문 전 대표 입에서 책임 있는 발언이 나오지 않는 이상, 회고록 정국이 잦아들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더민주와 소속 의원들도 속으론 답답해하는 눈치다. 문 전 대표가 쾌도난마식으로 논란을 잠재우지 못하면 여권의 진실 공방 프레임에 끌려가는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기인한다.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이 아니었다면 야권은 정국 주도권을 쥐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비선실세로 지목되는 최순실씨와 그 딸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난무하는 데다 우병우 수석 건도 야당 입장에선 여권을 공격하는 데 유용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원하든 원치않든 정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것도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었는지를 둘러싼 공방인 까닭에 사안이 가볍지 않다. 지금은 '삼면초가'에 몰리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사면초가에 빠질지도 모른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이럴 때 문 전 대표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실을 규명하자고 선수를 치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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