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공주문화원장

어느새 봄이다. 벌써 새봄, 속일 수 없는 봄이다. 봄기운을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바람이고 그 다음은 꽃이다. 봄이 되어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은 매화. 어느새 남쪽 지방에는 매화꽃이 피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봄은 탄생의 계절이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한낮에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도 부르르 떠는 것 같다. 진저리를 치는 것 같다. 그렇다. 봄은 또다시 떨림이고 진저리다.

며칠 전부터 우리 아파트 옆으로 흐르는 개울인 제민천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경칩 무렵에 운다 해서 경칩개구리. 물에서 사는 개구리들이다. 녀석들은 물에서 겨울을 나고 이렇게 봄기운을 느끼게 되면 소리를 내어 울면서 알을 낳고 다시 일 년 치 저들의 생애를 시작한다. 깊은 밤을 틈타 사람이 앓는 소리를 내는 것 같기도 하고 흐느껴 우는 것 같기도 한 개구리 울음소리. 개구리들은 그렇게 거짓말처럼 운다. 그렇다. 봄은 이렇게 거짓말처럼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우리 곁으로 온다.

이러한 봄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봄을 느껴야 한다. 봄이 봄인 것을 알아야 한다. 봄이란 말은 아무래도 `본다`는 말에서 왔지 싶다. 눈으로 바라보고, 귀로 들어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혀로 맛을 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므로 봄이다. 그렇게 봄은 찬란한 오감을 통해서 오는 감각의 세계이다.

그리고는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봄을 느끼는 것은 생명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을 느끼는 것이다. 부드러움을 느끼는 것이고 따스함을 느끼는 과정이고 작업이다. 그래서 봄에는 우리도 사랑을 잉태해야 하고 그리움을 간직해야 한다. 새잎을 내미는 나무나 새싹을 틔우는 풀꽃들처럼 말이다.

그 다음으로는 봄을 실행해야 한다. 봄을 닮고 봄처럼 되자는 말이다. 봄처럼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시각(視角)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을 바꾼다는 것은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던 것을 저렇게 보는 것을 말하고 타성적으로 대하던 것을 새롭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봄은 미세하게 오는 그 무엇이다. 그 미세함을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언제든 목통 크고 소란스런 것들은 진짜가 아니기 쉽다. 성경 속에서도 보면 신의 목소리는 미세한 소리로 온다고 그랬다. 그 미세함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도 그 미세함에 귀를 기울이는 정성과 겸손과 부드러움 속에서 잉태되고 성장하는 영혼의 꽃이다.

또다시 봄은 겨울을 이긴 승리자의 봄이다. 병을 이긴 환자의 환희로서의 봄이다. 겨울이라는 시련과 적막과 병고와 결핍과 고통이 있었기에 봄은 봄일 수 있고 그럴수록 눈부신 봄이 마련되는 것이다. 외람된 표현이지만 어쩌면 천국에는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지구에서 보는 그런 봄은 없겠지 싶다. 정말로 우리가 해마다 봄을 맞는다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다.

일 년 사계절에 대해서도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 풀이나 나무들은 일 년 사계절을 통해 한 생애와 같은 삶을 산다. 실지로 풀들은 일 년이 바로 그들의 일생이다. 이를 우리도 느껴야 하고 또 살아야 한다. 일 년을 살면서 일생을 사는 풀의 마음이 되어야 하고, 해마다 나이테를 더하는 나무를 닮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명한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일이다.

모름지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자신을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한다. 그저 그런 봄, 밋밋한 봄, 해마다 오는 비슷한 봄 가지고서는 안 된다. 절실한 봄, 하나밖에 없는 봄, 다급한 봄이어야 한다. 해마다 오는 봄이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은 일생을 통해 몇 차례의 정신의 봄을 겪는다. 그 봄을 통해 그는 새롭게 앓고 새롭게 치유되는 인생의 깊이를 가진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변모하고 성정하고 진화하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성공! 성공도 다르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대적인 성공이 있고 절대적인 성공이 있다. 상대적인 성공은 타인과 대결하는 성공이고 비교대상으로서의 성공이다. 절대적인 성공은 자기와 대결하는 성공이고 완성개념의 성공이다. 앞의 성공을 통해서 우리는 열등감과 불행감을 느낄 수 있지만 뒤의 성공을 통해서는 만족감과 행복을 갖게 될 것이다.

인생은 어차피 그립고 아쉽고 안타깝고 서럽고 외롭고 쓸쓸한 그 무엇이다. 그 속에서도 만족과 위안과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찾아야 한다. 달라이 라마는 그의 행복론에서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라고 했다. 이러한 성공과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때가 바로 봄이다. 자, 우리 다 같이 봄을 느끼자! 이 봄엔 다 같이 성공하는 사람들이 되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