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게 야윈 두 볼, 쓱 들어간 두 눈, 듬성듬성 빠진 머리숱, 가느다란 어깨…. 병색이 완연한 그는 분명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불과 십수 년 전의 당당했던 체구는 찾아볼 수가 없다. 누군가가 서서히 스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황색언론은 자기 몸도 지탱하기 어려운 그의 모습을 사진까지 찍어 게재하니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가.

세계적 컴퓨터기업 애플 창업자로 한 시대의 기술혁신을 주도해 온 스티브 잡스. 그는 단순한 컴퓨터기술이 아닌, 한 시대의 정신세계까지 변혁시킨 큰 인물이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그의 모습을 세인들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시대의 영웅 잡스가 ‘시한부 생명’설에 시달리고 있다.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이 공개한 그의 사진을 보면 기운이 없어 겨우 자기 몸을 지탱할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이 주재한 백악관 만찬에 참석해 건배하는 모습에서 묘한 여운이 남는다.

7년여 전, 췌장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는 그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수술에 성공한 후 그는 더욱 왕성한 삶을 살아왔다. 수술 1년 후 스탠퍼드대학에서의 연설이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됐던 주제로 ‘죽음’을 꼽았다. “인생은 짧으며 그날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 남의 생각이나 이야기에 얽매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진정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자신에게 물었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가장 소중한 일을 하는 데 금쪽같은 시간을 내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 날을 쓸데없는 일에 허비하면서 보낼 사람은 없을 것이다. 1분 1초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가진 것은 시간밖에 없다는 듯 하루를 낭비하는 사람이 많다. 주변 분위기나 체면을 의식하느라, 남의 시선과 눈치를 살피느라,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 채 겉도는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잡스가 강조하는 말은 분명하다. “배고프게 살아라. 바보처럼 살아라.(Stay Hungry. Stay Foolish.)”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나은 삶을 향해 항상 무언가 갈구하면서 영혼의 배고픔을 채워가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바보처럼 어리석다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란 뜻이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늘 배고픈 마음으로, 바보처럼 그 길을 걸어온 삶. 그것은 내가 걷고 싶은 인생의 여정이기도 하다.

‘연봉 1달러’ 최고경영자, 철저한 채식주의자 등으로 알려진 시대의 거인. 카리스마 넘치는 그를 일부에선 예수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건강이상설에 따라 애플의 주가도 폭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애플이 너무 잡스 개인에만 기대고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그의 56번째 생일이 엊그제(2월 24일)였다. 아내와 4명의 자녀를 둔 그도 한 명의 가장(家長)일진대 시한부 생명을 사는 심정이 어떨까. 그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의 삶은 언제가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를 정도로 소중할 것이다. 힘든 병마의 고통과 싸우고 있는 잡스가 기적처럼 회생해 좀 더 오래 살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그처럼 위대한 인물이 간다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늘 드는 의문, 왜 주님은 쓸모 있는 사람을 먼저 데려가시는가. 아프리카 남부수단에서 의료선교를 하다 대장암 선고를 받고 48세의 나이로 선종하신 이태석 신부님도 그랬다. 왜 그런 사람이 좀 더 인류에 헌신할 시간을 주님은 주지 않는지.

그러나 한편으론, 진정 예수처럼 살다 가신 신부님처럼 온몸을 불태워 이승을 산다면 물리적인 삶의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개중에는 의미도 없는 수명을 연명하느라 주변인을 시달리게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평생 보장된 안락한 삶을 버리고 홀연히 내전으로 얼룩진 땅에 가신 신부님 같은 분도 계시다.

만약 내가, 당신이, 스티브 잡스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처럼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매사에 최선을 다해 청아(淸雅)하게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오늘 하루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아름답다.

이용우 토론토 통신(재 캐나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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