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여? 우린 피해자여, 왜 자꾸 태안만 가지고 이러는 거여.”

지난 19일 방제작업 현장에서 만난 한 피해 어민의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 태안 주민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가고 있는 듯하다. 사고 최대의 피해자인 ‘태안’이 ‘기름 유출’의 대명사가 되게 생겼기 때문이다. 청정지역으로 손꼽히던 태안과 안면도, 천수만 등은 앞으로 오랫동안 전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기름 오염 지역’으로 각인될 것이다. 태안은 ‘치명적인 피해자’일 뿐인데도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의 수식어가 돼버린 꼴이다.

해외 사례는 어떨까. 1989년 3월24일 새벽 캘리포니아로 항해 중이던 한 배가 알래스카 만의 해협인 프린스 윌리엄 사운드에서 좌초했다. 사고로 선체가 파손되면서 선적 원유 1080만 갤런(24만 배럴)이 흘러나와 알래스카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들었다. 이 사고는 ‘엑손 발데스호 사고’로 알려졌다.

국내에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 사고가 있었다. 12년 전 7월 23일, 광양항 호남 정유 부두에서 태풍을 피하기 위해 피항지를 찾던 배가 암초에 좌초돼 여수 앞 바다 등 총 73.2km 해상을 오염시킨 사고를 우리는 ‘씨프린스호 사고’라고 부른다.

이쯤 되면 ‘왜 태안 기름유출사고라고 부르냐’는 주민들의 토로가 충분히 납득된다. 통상적으로 사고 선박의 이름으로 불려왔던 선례에도 불구하고 왜 이번만은 유독 지역에 집중되는 걸까.

“무엇보다 누군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많은 사람을 울린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부모님이 모두 방제작업에 동원돼 휴일에도 학교에 나온 모항초등학교 성민관군(12)의 말이다.

사고 후 언론 보도와 국민적 관심은 피해지역에만 집중돼있다. 사고원인 및 경찰 조사 결과에 대한 해경의 입장도 다분히 소극적이다. 이는 사고 선박인 ‘헤베이 스피리트호’나 사고 선박에 부딪힌 ‘삼성중공업 T-5, T-3 예인선’ 등에 대한 일반 국민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장의 피해복구에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누군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이 시급하다. 봉아름 기자 <사회부 의료환경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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