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1팀 이태민 기자
취재1팀 이태민 기자

내 고향 서울 한복판엔 국내 최고(最古)의 경기장인 동대문운동장이 있었다. 화려한 쇼핑타운 속 고독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 모습이 어린 내겐 대궐처럼 웅장해 보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1925년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시민들의 희로애락은 2007년 수많은 논란 끝에 산화(酸化)됐다. 늙은 몸뚱아리를 지키기 위한 축구계와 야구계의 이례적인 화합도,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던 재래시장 상인들의 눈물도 `디자인 서울`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시민들의 기대와 염원이 폭죽과 함께 꽃폈던 개장식과 달리 철거 과정은 매우 가벼웠고, 오랜 영욕의 세월을 짊어진 노장의 뒷모습은 초라했다.

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한밭종합운동장도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장이 사라지는 광경을 `다시보기`하는 기분이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출입기자로서 처음 들어선 한밭은 더 이상 으리으리하지 않았다. 다만 외딴 섬처럼 울적해보였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 속에서 건진 함성 소리는 동대문의 그것과 유사했다. 그 속에 담긴 수만 가지 감정들은 동대문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건물 노후화`라는 명분 앞에 무색했다. 설상가상 코로나19로 고별식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으니 그 설움이야 이루 말할 수 있을까.

동대문과 한밭은 더 이상 경기를 치르기엔 나이가 너무 들었다는 진단부터 송별회 없는 헤어짐까지 똑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동대문에겐 잠실이란 대체 시설이 있었지만, 한밭에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한밭을 둘러싸고 지역 유일 체육 메카가 사라진다는 우려가 쏟아지지만, `프로야구 메카`로 활성화하겠단 의지를 막을 순 없어 보인다. 대체 시설로 내세운 서남부스포츠타운의 운명은 사실상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의 유치 여부에 걸려 있다. 만약 U대회를 유치하지 못할 경우, `종합운동장 없는 광역자치단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대회 유치에 대한 대전의 의지 또한 명징하지만, 정작 서남부스포츠타운 외에 뾰족한 대안 모색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간다. 이제 K리그1 진출의 감격은 월드컵경기장으로, 가을 야구의 환희는 베이스볼드림파크로 각각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체전과 U대회의 벅찬 감동은 어디에 둥지를 틀 것인가? 충청권 체육의 백년대계를 시작할 U대회 예비 후보도시 선정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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