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법무법인 윈(WIN) 대표변호사
장동혁 법무법인 윈(WIN) 대표변호사
사람들은 가득 채우기를 원한다. 무(無)보다 유(有)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노자(老子)는 `비움`과 무(無)를 중요시 한다. 노자 11장에는 `비움이 쓰임이 된다`는 `무지이위용(無之以爲用)`이라는 문장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으니 그 빈 공간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니 그 빈 공간에 그릇의 쓰임이 있다. 문과 창을 뚫어 집을 만드니 그 문과 창의 비어 있는 곳에 쓰임이 있다. 이처럼 유(有)가 이로운 것은 비움(無)이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노자가 강조하는 `비움`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빈 공간`이 있을 때 더 온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쉼`이 있어야 `삶`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비움이 쓰임이 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리더의 자질에 적용해 보려 한다. 리더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비움`이다. 우리는 리더를 선택할 때 `꽉 채워져 보이는` 사람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이라면 무릇 정치, 경제, 외교, 안보, 교육, 복지에 관해 어떤 질문을 받더라도 막힘 없는 답변을 해주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편협한 생각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빈 공간`이 없다면, 자칫 독재로 흐를 위험이 크다.

리더에게는 노자가 말한 문(門)과 창(窓)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문과 창은 투명하고 쉽게 열려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아홉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한 가지 단점이 남의 말을 절대 듣지 않는 것이라면 그는 절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다소 능력이 부족하고 단점이 있다 하더라도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장점을 가진 사람이라면 훌륭한 리더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춘 것이다.

리더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말을 막거나 중간에 가로채지 않고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과 창을 열었으나 바람 한 점 들어갈 공간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한비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군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버려야 신하들이 본바탕을 드러낸다. 신하들이 본바탕을 드러내면 군주의 눈과 귀는 가려지지 않을 것이다." 경청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빈 공간`까지 마련해 두는 것이다.

`비움`의 미덕을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자. 민주주의는 51%의 의사가 국가 전체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래서 49%를 위한 `빈 공간`을 만들어 두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1%의 제식구만 챙기다 보면 결국 국가는 망하게 된다. 그 빈 공간을 만들지 못하는 리더는 결국 다수의 힘을 이용한 독재자에 불과하다. 제식구만 챙긴다는 것은 결국 자기 욕심으로 꽉 채워져 있다는 의미다. 리더의 자리, 즉 권력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거기에 `국민`이 들어갈 공간은 없다. `민심`이 들어갈 공간은 더더욱 없다.

얼마 전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를 선정했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는 잡지 않고 오히려 쥐와 한패가 되어 곡식을 축내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본래 고양이와 쥐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것이 정상이다. 고양이와 쥐처럼 `권력`과 `돈`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 즉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2021년 한 해를 돌아보면 그 공간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이 `부패`다. 삼권분립도 결국은 입법, 행정, 사법 사이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공간마저도 없애려 하고 있다.

희망은 절망의 끝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비움`에서 다시 희망을 찾자. 비울 줄 아는 리더, 여백이 있는 리더를 세우자. 그 여백에 대한민국의 희망을 채우자. 장동혁 법무법인 윈(WIN)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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