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초인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공포와 긴장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순간 슈퍼맨이나 아이언맨처럼 위기의 순간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구원투수가 나타나길 간절히 염원해 보지만, 역시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는 것만 절감할 뿐이다.

성인 백신 접종률이 90%에 달했고 지난 2년간 숨죽이며 견뎠지만, 현실은 새로운 변종의 출현으로 지구촌을 또 다시 긴장모드로 순식간에 돌려놓았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19의 새로운 변이인 `오마크론`의 확산이 거세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10명 이상 확인됐다. 오미크론 변이 판정을 받은 사람과 오미크론 변이 감염 의심자와 접촉한 이들도 파악된 경우만 약 1000명에 이르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변이에 대한 전파력, 독성, 백신에 대한 면역회피 등 자세한 정보는 알 수가 없다. 진원지인 아프리카 국가들로 여행 금지 및 여행 후 격리 조치 등 각국은 오미크론의 전파를 줄이고자 발 빠르게 빗장을 거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정부도 이달 16일까지 2주간 국외에서 입국하는 모든 입국자에 대해 10일간 격리 조치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예방 접종을 했더라도 격리가 면제되지 않는다. 또한 정부는 이달 6일부터 방역패스 확대 적용을 실시하기로 했다. 식당, 카페 등 다중이용시설 출입 시 반드시 백신 접종 완료 증명서나 PCR 음성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특히, 유흥시설인 유흥주점, 단란주점, 클럽·나이트, 감성주점, 헌팅포차, 콜라텍·무도장은 백신 접종 완료자나 항체 보유자만 출입이 가능하다. 식당은 1인의 경우 방역패스 면제지만 유흥시설은 백신 미접종자는 PCR 음성 확인이 있어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즉, 식사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행위는 1인의 경우 예외를 두었다.

하지만 이번 방역지침에 대해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방역지침에 협조적이었던 영세자영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들은 일일이 손님을 상대로 확인해야 하는 불편함과 마찰 등이 예상됨에 따라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마스크를 벗을 일이 전혀 없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방역 패스 조치가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더욱이 그동안 빈번하게 대형 집단 감염사태로 물의를 빚은 종교 시설을 방역패스 예외 장소로 놔둔 사항에는 무신론자들 입장에서는 납득이 전혀 안 된다.

이런 완화는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결정이라는 비판적인 지적도 있다. 백신 미접종자들도 개인적 선택을 존중해달라며 아우성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흔한 스타벅스 커피조차 마실 수 없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백신 미접종자들은 알아야 한다. 또한 백신 접종자들도 부작용과 위험을 감수하고 나와 타인의 건강을 위해 희생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백신 미접종자지만 적어도 현재 타인에게 감염시킬 확률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최소한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 달라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지 묻고 싶다. 내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만 당연하고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의무와 배려는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는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매우 위험하고 몰상식한 행동이다.

방역패스의 목적은 백신 접종자든 미접종자든 시민 모두가 코로나 위기 극복에 동참하는 책임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는 조치다. 또한 시민들의 이동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을 야기해서 이동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백신 접종 인센티브라고 우쭐할 필요도 없다. 다같이 동참해야 코로나19의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일상으로의 복귀도 앞당길 수 있다. 사실 일상으로의 점진적 복귀에는 우리 모두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 매일 수천 명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중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의료진과 방역 종사자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치명적인 피해를 겪은 영세 소상공인, 등교를 못한 학생들, 자식들과 생이별한 요양병원 어르신들, 백신 접종과 방역에 동참한 우리 국민 모두의 희생이 여전히 필요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우리 모두가 어쩌면 희생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전염병 위기의 시대에 기적처럼 등장해서 하루아침에 우리를 구해 줄 영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원망하고 분노하고 거부하고 투정해봤자 소용없다. 각자 위치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코로나로부터 희생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오한진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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