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과 증언이 중요하다. 그러나…
약 10년 전 전주의 한 연구모임에서 전주의 시민단체 활동가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우연히 광주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여 그 참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광주에서 부르던 노래며 구호를 절규하듯 내뿜으며 자신의 남은 삶은 광주를 `증언`하기 위해 허락된 것이라고 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의 하라 다미키는 히로시마 출신 작가로 1945년에 히로시마에서 피폭하고 1946년 도쿄로 옮겨 와 `여름 꽃` 등을 발표하며 `원폭 문학` 작가로 활동했다. 도쿄에서 히로시마의 참상을 전하며 전쟁과 원폭의 `증언자`로 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접한 도쿄는 패전 후 부흥에만 열중해 히로시마는 도쿄와는 무관한 듯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귀 기울이지 않고 2,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원폭을 완전히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 하라는 절망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51년 미국이 한국전쟁의 국면 전환용으로 한반도에 원폭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하라는 그 뉴스가 보도된 다음 날 도쿄의 츄오센 전철의 선로에 누워 생을 마쳤다.
하라의 자살 이유에 대해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 더해 원폭의 참상이 이웃 나라에서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뉴스가 그의 자살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고향 토리노로 돌아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참상을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낱낱이 밝혔다. 책의 서문에는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 즉 `증언`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한 저자의 집필 의도가 실려 있다. 책의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간의 비인간성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용은 거의 법적인 차원의 `증언`인데 분노나 증오, 복수가 아닌 `증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언`의 힘을 믿고자 한 것이다.
레비는 그 후 `휴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을 발표하며 아우슈비츠의 `증언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1987년 4월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맹렬히 글을 쓰며 `증언`하던 그가 돌연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팔레스타인 구역에서의 대학살 등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행태를 목도하며 본인의 `증언자`로서의 삶에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부인의 증언이 있다.
`증언자`들의 삶의 의욕을 꺾는 것은 자신의 `증언`이 무의미했다는 허탈감과 주위의 무관심이리라.
얼마 전 유력 대선 후보의 이른바 `전두환 옹호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이런 식의 `문제적 언행`들이 진심으로 두려운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 일부에 이런 인식이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이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한순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다시 `광주 사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동안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기다려 온 수많은 `증언자`들이 지치거나 그동안의 자신들의 `증언`이 무의미했음을 느끼며 희망의 끈을 놓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많은 예가 말해주듯이 `증언자`들이 바라는 세상은 쉬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두렵다.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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