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과 증언이 중요하다. 그러나…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교수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교수
최근 전두환 씨의 사망으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1980년에 일어났으니 정확히 41년이 지났다. 이만큼 시간이 흘렀으면 이제는 진상 규명이 끝나고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희생자들의 치유에 집중해야 하는데 아직도 진상 규명조차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아연해진다.

약 10년 전 전주의 한 연구모임에서 전주의 시민단체 활동가로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우연히 광주를 방문했다가 발이 묶여 그 참상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동료의 죽음을 목도했다는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광주에서 부르던 노래며 구호를 절규하듯 내뿜으며 자신의 남은 삶은 광주를 `증언`하기 위해 허락된 것이라고 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일본의 하라 다미키는 히로시마 출신 작가로 1945년에 히로시마에서 피폭하고 1946년 도쿄로 옮겨 와 `여름 꽃` 등을 발표하며 `원폭 문학` 작가로 활동했다. 도쿄에서 히로시마의 참상을 전하며 전쟁과 원폭의 `증언자`로 살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접한 도쿄는 패전 후 부흥에만 열중해 히로시마는 도쿄와는 무관한 듯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해도 귀 기울이지 않고 2,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원폭을 완전히 `과거의 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 하라는 절망했다. 그러던 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1951년 미국이 한국전쟁의 국면 전환용으로 한반도에 원폭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하라는 그 뉴스가 보도된 다음 날 도쿄의 츄오센 전철의 선로에 누워 생을 마쳤다.

하라의 자살 이유에 대해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증언자`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에 더해 원폭의 참상이 이웃 나라에서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뉴스가 그의 자살과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탈리아의 작가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운 좋게 살아남아 고향 토리노로 돌아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참상을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 낱낱이 밝혔다. 책의 서문에는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을 거기에 참여시키고자 하는 욕구" 즉 `증언`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한 저자의 집필 의도가 실려 있다. 책의 제목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인간의 비인간성을 `증언`하는 것이다. 내용은 거의 법적인 차원의 `증언`인데 분노나 증오, 복수가 아닌 `증언`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증언`의 힘을 믿고자 한 것이다.

레비는 그 후 `휴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등을 발표하며 아우슈비츠의 `증언자`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1987년 4월 자택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맹렬히 글을 쓰며 `증언`하던 그가 돌연 자살한 것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팔레스타인 구역에서의 대학살 등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행태를 목도하며 본인의 `증언자`로서의 삶에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부인의 증언이 있다.

`증언자`들의 삶의 의욕을 꺾는 것은 자신의 `증언`이 무의미했다는 허탈감과 주위의 무관심이리라.

얼마 전 유력 대선 후보의 이른바 `전두환 옹호 발언`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이런 식의 `문제적 언행`들이 진심으로 두려운 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 일부에 이런 인식이 뿌리 깊다는 사실이다. 이러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한순간에 `광주 민주화 운동`이 다시 `광주 사태`가 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동안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기다려 온 수많은 `증언자`들이 지치거나 그동안의 자신들의 `증언`이 무의미했음을 느끼며 희망의 끈을 놓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많은 예가 말해주듯이 `증언자`들이 바라는 세상은 쉬이 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기 때문에 진심으로 두렵다. 형진의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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