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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평] 오징어 게임의 심리학

2021-10-20 기사
편집 2021-10-20 07: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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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만약 17억 원의 현금을 준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냄새가 살짝 나는 이 질문은 사실 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참여자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대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포기할 의향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중에는 초콜릿, 해변, 봄, 그리고 햇빛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라면 17억을 받는 대가로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동안이 아니라 영원히 포기하는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초콜릿은 포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스크림과 더불어 스트레스에 빠진 나를 구원해주는 두 가지 물질 중 하나인 초콜릿이지만, 17억이라면, 아이스크림만 먹으면서 버텨도 될 것 같다. 물론 아이스크림 중에서도 초코 아이스크림과는 영영 이별이겠지만. 성인이라면 이 정도는 포기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나 싶다. 1단계 통과.

해변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동해의 박력 있고 드넓은 바다를 좋아한다.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 큰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즐거움이 좋다. 드넓은 모래사장을 여유롭게 걷는 기쁨도 상당하다. 하지만 17억과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기껏해야 1년에 몇 번 가는 바다라고 생각하자. 산도 좋지 아니한가. 나에게는 계룡산 수통골이 있다고 합리화하자. 2단계 통과.

봄은 만만치 않은 상대다. 봄을 포기하라니. 추운 겨울을 간신히 버티고 맞이하는 봄의 기운을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큰 불운을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이 사라지면 겨울이 끝나자마자 바로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참자. 17억 아닌가. 어차피 기후변화로 인해서 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지 않나. 그리고 우리에게는 가을이 남아 있으니까. 좀 힘든 결정이었지만, 봄과도 작별을 고하자. 봄아 안녕. 3단계 통과.

마지막 상대인 햇빛은 생명의 근원 아닌가. 햇빛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지? 햇빛을 봐야 비타민D도 생기는데. 암흑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런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고의 전환이다. 대전환. 우리에게는 합성 비타민제가 있지 않나. 먹어서 해결할 수 있다. 한 통에 60알 들어 있는 2만 원짜리 비타민D를 한 통 사면 2개월을 버틸 수 있다. 심지어 칼슘과 마그네슘까지 들어 있다. 햇빛이 없다고 빛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등을 사용하면 밝은 곳에서 살 수 있다. 햇빛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만 안 좋아지는데,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드디어 4단계 관문 통과.

돈은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만약 4단계를 모두 통과했다면, 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돈을 위해서 사람들이 목숨까지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456억을 타기 위해 456명 중의 한 명만 살아남을 수 있는 죽음의 게임에 참가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돈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포기할 수 있다는 사람들은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10억을 벌 수 있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1년간 갇혀있어도 수감돼도 좋을까?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윤리연구센터에서는 학생들에게 10억이 생긴다면 1년간 감옥에 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2019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질문에 답한 고등학생의 57%가 갈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려스러운 것은, 10억을 벌 수 있다면 감옥에 가겠다고 답한 비율이 과거 조사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17억 연구의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졌던 사람보다 배척되고 소외당했던 사람이 돈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포기할 의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간관계로부터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를 돈이라는 수단을 통해 획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1번 참가자를 제외한 455명의 참가자들은 모두 단절된 관계와 이로 인한 외로움 때문에 마음의 통증을 경험하고 있던 사람들이다. 관계가 단절된 사회, 외로운 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돈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진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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