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섭 편집부장
송원섭 편집부장
사뭇 낯선 표정으로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어린이, 엄마 품에 안긴 아기들, 심지어 신생아까지 모두 조금은 지쳐 보였지만 그래도 환한 표정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섰다. 우리 정부를 위해 일한 아프간인 390명이 텔레반의 보복을 피해 파키스탄을 경유한 11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다. 긴박했던 군(軍) 수송작전‘미라클’은 이렇게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이날 들어온 아프간 사람들은‘특별 기여자’신분이다. 우리나라는 2002년 의료 부대인‘동의부대’와 공병 부대인‘다산부대’를 아프간에 파병했고, 2010년엔 바그람 미군기지에 병원을 짓고 의료 지원에 나섰다. 이들이 바로 아프간 재건 과정에서 우리와 협력한 의사와 간호사, 대사관과 직업훈련원 등에서 일한 통역사·IT전문가와 그의 가족들이다.

입국하자마자 지난해 코로나 사태 때 중국 우한 교민들이 머물렀던 충북 진천 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많은 인원을 한 번에 수용할 수 있고 10세 미만 어린이가 많아 가족단위 다인실이 있다는 점에서 최적의 장소로 정해졌다. 정부는 이들에게 우선 90일간 머물 수 있는 단기방문 비자를 준 후 법령을 개정해 장기 체류가 가능한‘거주 비자’를 발급해줄 방침이다.

하지만 우려가 현실이 됐다. 지난 26일 카불 공항에서 이슬람국가 IS의 폭탄 테러로 미군 100여 명이 사망했고, 민간인 등 수백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미국은 하루 만에 드론을 이용해 이번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단체를 보복 응징하고 또 다른 테러가 있을 수 있으니 공항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간발의 차이로 우리의 마라클 수송작전은 끝나 다행이지만 지금 아프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를 도와 일한 아프간 사람들을 받아들인 것은 도의적 책임뿐만 아니라 인도적 측면에서도 마땅한 일이다. 텔레반은 인접국으로 통하는 국경을 봉쇄하고 연일 평화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간인 처형과 여성 인권 유린 등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욱 필요한 때다. 지금 아프간은 출구가 없다. 송원섭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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