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연산군 7년 5월 13일 조선실록에 나와 있는 상참 중의 일화다. 승지 신용개(申用漑)가 전라도 남월의 양민 김금산이 그 아비의 머리카락(상투)을 휘어잡았으니 이는 참부대시이기로 초복하기를 건의한다. 이에 연산군이 율대로 하도록 명한다. 참부대시(斬不待時)는 오늘날로 치면 사형이다. 조선시대에서 사람 목숨을 끊는 사형이란 자연 질서에 반하는 것이기에 그 형의 집행은 자연 질서가 쇠퇴하는 추분부터 춘분사이에 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처럼 사형의 집행은 그 시기를 기다려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를 깨는 것이 참부대시다. 죄질이 중하니 이에 구애하지 않고 즉시 집행하는 것이다. 상투 하나 잡은 것 치고는 너무 과한 처벌인 듯 한데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의 유교적 예의를 목숨보다 중요시 여긴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해될 법도 하다. 그리고 상투는 사료에 언급될 뿐 실제 학대는 더 컸으리라 짐작된다. 조선실록을 보면 이런 일들이 드물지만 종종 있다. 정사에 바쁜 임금에게 이런 가족사건까지 전해진다는 것이 놀라운데 가만히 보면 대개 부모 학대와 관련돼 있다. 공통적인 것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지나치리만큼 엄중히 처벌하였다는 점이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부모 봉양을 게을리 한 자는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부모에게 불손한 언어를 사용한 사람은 귀양을 가기도 했다. 이 가운데서도 부모시해는 역모나 반란만큼 중한 죄로 대개 능지처참으로 다뤘으며 시체를 나눠 거리에 내걸고 이를 백성들이 보게 하였다. 해당 고을의 장은 파직되고 아예 그 고을을 행정구역에서 없애기도 했다. 또한 임금은 이를 자신의 부도덕한 소치로 치부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반성하는 전교를 백성들에게 내렸다.

노인학대는 경로효친과 유교사상이 하늘을 찌르던 조선시대에서도 있었고 인권의 가치와 수호가 법으로 보장되는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양상은 사뭇 다르다. 어쩌다 한 번 있을 법한 일이 요즘은 급격한 사회변화와 가족기능의 약화, 불안정한 사회 상황 등이 맞물려 점점 흔해지고 잔혹해진다. 얼마 전 복지부가 발표 한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국내노인 학대사례는 모두 6259건으로 전년보다 19.4%로 증가했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재학대 사례는 22.8%가 증가했다. 2016년부터 줄지 않고 계속 증가하고 있다. 으레 가정폭력이 그렇듯 노인학대는 대개 가족이라는 폐쇄적인 집단에서 발생하기에 이를 발견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우리가 아는 것은 기관에 신고 접수된 사례일 뿐이니 실제 학대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다. 주변과 지역사회의 세심한 관심이 중요한 이유다.

노인학대는 해당사회의 가족기능이 얼마나 와해됐으며 스트레스가 높은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예이다. 낮은 인권의식은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사후 뒷수습 정책이 대부분이다. 세상에 예방보다 나은 정책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학대당한 노인을 위한 기관설치의 의무만을 법으로 명시할 뿐 예방은 법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아동복지법에서 명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관련법이 있어야 정책이 뒤따르고 힘을 받는 것인데 안타깝다. 일이 터져야 비로소 손을 쓰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정책은 그만해야 한다. 부모라면 가슴이 떨려 제대로 기사조차 읽지 못했던 정인이 사건. 그 뒤 만들어진 정인이 법은 소중한 아이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막을 수 있었던 희생이 입법과 정책의 재료가 되어서는 안된다. 노인학대 예방대책 수립과 인프라 구축을 위해 현재보다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사회와 시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대응이다. 조선시대는 경로효친과 유교적 사상이 노인학대의 가장 큰 억제력으로 작용했지만 현대사회는 그렇지 않다. 사회시스템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해당 사회의 성숙도란 약자가 얼마나 보호 받는 가로 평가된다. 문명사회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다. 노인이 행복한 사회가 바로 이상적인 복지국가이자 문명사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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