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어땠을까?" 가수 싸이의 노래다. 박정현이 참여한 이 노래의 가사는 사랑했던 사람과의 헤어짐과 후회를 담고 있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마지막에 널 안아줬더라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원치 않는 이별 후에 하게 되는 생각들이다. "만약 내가 그때 냉정하게 굴지 않았더라면,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만약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사실-상반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한다. 실제로 일어난 사실과는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거나 일의 결과가 실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과에 직면했을 때, 거의 자동적으로 사실-상반 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도 사실-상반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금메달이 목표였던 선수가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을 때, 이들은 거의 자동적으로 사실-상반 사고를 하게 된다.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이겼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메달의 색깔에 따라 사실-상반 사고의 내용이 다르고, 그 결과,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행복감의 정도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중에서 어떤 메달을 땄을 때 선수들이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을까? 당연히 금메달이다. 그렇다면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 중에는 누가 더 행복한 표정을 지을까? 한 연구에서는 1992년도 바르셀로나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메달리스트들의 안면 표정을 분석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는 동메달을 딴 선수가 훨씬 더 행복한 표정을 지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시상대에 올라갔던 그 순간만큼은 은메달보다 동메달이 선수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시상대에 오른 선수들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다들 너무너무 행복한 표정이고, 동메달을 수상한 선수들의 표정도 대체로 밝다. 하지만 은메달을 딴 선수들 중에는 무표정이나 표정이 어두운 선수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떻게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선수를 더 어둡게 만들 수 있을까?

은메달과 동메달을 딴 선수들의 사실-상반 사고의 내용이 달랐기 때문이다. 은메달을 딴 선수들이 하게 되는 사실-상반 사고는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 그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금메달이었는데"라는 것이다. 반면, 동메달을 딴 선수들은 "내가 까딱했으면 메달도 따지 못할 뻔했는데, 그때 실수하지 않아서 다행히 동메달을 땄구나"라는 사실 상반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우리 마음속에서 떠오르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행복의 크기는 달라진다. 실제로는 은메달을 딴 선수가 동메달을 딴 선수보다 자신이 원했던 금메달이라는 목표에 더 가까이 갔지만, 사실-상반 사고의 내용 때문에 시상식 순간에 경험하는 행복의 정도는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2021 도쿄 올림픽의 대한민국 양궁 경기에서는 이런 사실-상반 사고의 가정이 어긋나는 장면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양궁팀에 패하는 상대 팀의 선수들은 마치 사실-상반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패했을 때도 전혀 아쉬워하는 표정이 없었고, 다들 환하게 웃었다. 특히, 우리나라 남자 대표팀과 준결승에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졌던 일본 대표팀 선수들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보여준 너무나도 환한 표정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시상대에 오른 은메달 선수들의 표정에서도 아쉬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양한 설명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우리 양궁의 압도적인 실력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한민국 양궁이 너무 강해서 상대 선수들은 자신들이 이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한국 양궁의 저력은 상대 선수들의 사실-상반 사고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경이로운 한국 양궁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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