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밥 먹고 합시다." 사는 것과 먹는 것이 불가분 관계이지만 한여름 먹는 것도 고역이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끝난 장마와 함께 연일 폭염이 강타하고 있다. 한낮은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가마솥 더위가 펄펄 끓는다. 밤은 식지 않은 열기가 숙면을 방해한다. 건강한 여름 나기는 농경사회 조상들도 같은 바람이었다. 오죽했으면 초복, 중복, 말복 세 번의 절기를 두며 휴식과 보양 시간을 가졌을까. 선인들은 한해 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삼복철이면 산간계곡을 찾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으로 몸을 보양했다. 복날 먹는 음식을 복달임이라 부르며 애용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며 갑갑함이 더해진 요즘도 복달임 문화는 지속돼 복날 많은 단체 급식소가 삼계탕을 내놓았다.

하지만 익숙한 보양식도 어떤 이에게는 폭력적일 수 있다. 가령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채식주의의 최종 단계인 `비건` 실천자에게 삼계탕만 즐비한 식탁은 고통의 시간이다. 음식을 둘러싼 갈등은 종교문화권을 달리하면 더욱 첨예해진다. 돼지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이슬람 신자들에게 삼겹살 회식이 반가울 리 없다. 소를 신성한 동물로 숭배하고 그 고기를 금식으로 규정한 힌두교 신자에게 소고기 스테이크를 함께 하자는 건, 불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변화도 싹 트고 있다. 채식 선택권 보장과 더불어 미래세대들의 건강과 기후의식 제고를 위해 광주교육청이 학교 급식에 주 1회 `채식의 날`을 도입한 이후 서울, 울산, 전북, 인천 등의 학교급식에도 주 1회 채식 식단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도 할랄 음식을 제공한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락된 것`을 뜻한다. 이슬람 율법에서 허락되어 무슬림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할랄 식품이라고 한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내가 먹는 것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식단의 다양화는 우리 일상의 결이 그만큼 공존과 평화에 가까워짐을 반증한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이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의 시 `선운사`의 한 대목이다. 이 여름 당신 앞의 음식은 무엇인가?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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