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회 호서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김동회 호서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간의 본질적 욕망 중 하나를 함축한 말이지만 오늘날과 달리 예전에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엄격한 신분 사회를 구축하고 있던 과거 시대에 하층민의 이름이 정사에 기록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양반 중심의 조선 시대는 더욱 심하였다. 조선은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신분체제를 사회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고 신분의 벽을 넘는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최하층민이 왕명에 의하여 역사에 기록된 특별한 인물이 있다. 바로 정조 시대 제주도 여인 김만덕이다.

이런 그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고 무엇을 하였기에 불가능을 현실 가능하게 하였는지 살펴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만덕은 1739년에 태어나 74년을 살았으니 천수를 누렸다. 당시 백성들에 대한 사회적 압제와 규제는 가혹하였다. 그중 하나가 제주도인의 출륙금지령이다. 제주도 밖의 생활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규제이다. 특히 여자는 육지로 시집가는 것도 금지하였다. 200년 가까이 시행됨에 따라 외부와 거래도 어려워 열악한 자연환경에 기대어 매우 곤궁한 삶을 이어갔다.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김만덕은 3남매의 외동딸로 태어나 12살에 부모를 여의고 기녀에 의하여 걷어지며 자연스럽게 기녀가 된다. 상민에서 기녀라는 천민으로 신분 추락하였지만 그 이후 자력으로 신분을 회복한다. 기녀의 생활을 접고 상업에 종사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제주도민의 목숨을 살리는데 기꺼이 베푼다. 이러한 사실이 정조 왕에게 알려지며 왕명에 의하여 의녀 반수(궁궐 의녀 중 최고 지위)에 임명되어 왕을 알현하고 금강산 유람까지 하게 된다

상민에서 천민으로 추락한 신분을 회복하기란 달걀로 바위를 깨는 격이다. 헌데 바위를 깬 것이 김만덕이다. 몇날 며칠이고 관아에 엎드려 자신의 처지가 부당함을 호소하고 청원하여 뜻을 관철한 것이다. 태산도 움직일 용기와 집념, 진정성이 사람을 감동시켰고 제도의 벽을 허문 것이다. 또한 부의 축적과정은 기업가 정신의 전형이다. 사농공상의 사회에서 상민이 상업에 뛰어듬은 자기부정이다. 아무도 엄두 못 낼 때 과감하게 물산 객주업을 시작한 것이다. 숙박, 위탁판매, 창고, 현장거래, 교역 등 대형 종합유통센타 역할의 객주를 만든 것이다. 제주도에 부족한 것을 육지에서 가져오고 육지에서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형식이었다. 상호 필수 보완적인 것을 싸고, 많이, 정직하게 신용 중심의 거래로 모두의 이익을 추구하였다. 더나가 상단을 형성하여 대단위 해상 교역을 주도하였다. 아마도 당시 왜, 중국, 유구 등과도 교역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2백 년 전 현대적인 경영 방식을 구사 재산을 모았음은 교훈적이다. 힘들게 축적한 부를 나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미 2천 년부터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부의 인색함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런 인색과 상식의 틀을 벗 어 날 때 감동이 있다. 1794년 제주도는 지독한 가뭄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굶어 죽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 김만덕은 전 재산인 천금을 들여 쌀을 구해 주민들을 구휼한다. 그의 나눔과 베품은 신화가 되어 오늘도 회자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특히 쌓은 공덕에 티끌만큼의 사욕도 없었기에 정조의 물음에 그저 왕궁 구경하고 금강산 유람이 소원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소원에는 도전과 혁신의 정신이 담겨 있다. 출륙금지의 상민이 육지에 나가고 왕을 만난다는 것은 금기였고 금강산 유람은 선비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런 시대에 육지에 나가 왕을 알현하고 금강산을 유람함은 개인적 호사가 아닌 사회적 한계와 불가능에 도전하는 개척자이자 사회혁신가의 모습이다. 이런 그를 기리기 위하여 제주도는 김만덕 기념관을 건립하고 매년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제 자랑스러운 CEO 김만덕은 제주도가 아닌 전 국민의 이름으로 추모되고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그의 얼과 가치, 행동을 거울삼아 제2, 3의 김만덕이란 이름이 많아지길 기대 한다. 김동회 호서대학교 기술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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