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나는 종양치료를 전문 과목으로 하는 외과 의사다. 20여 년 정도 암 진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이제는 환자들도 의사들 못지않게 자기 병에 대해 전문적인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특히 최신의 진료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임상시험 중이어서 실제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환자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또 암의 진행을 멈출 수 있게 하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는 기사가 있었다며 언제쯤이면 이런 약물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는 보호자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더 이상 이런 의학 정보는 의사에게 국한된 전유물이 아니며 조금만 수고를 들이면 누구든지 알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다. 이런저런 발견과 그 의미를 설명하는 기사를 보다 보면 병이 이제 곧 정복될 것 같고, 이 혜택이 병으로 고통받는 나에게 금방이라도 현실이 될 것 같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이론적으로는 좋지만 실제 사용에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나의 대답이다.

위대한 발견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검증` 단계다. 무수히 많은 반복과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하다. 진료의 현장에서는 이런 과정이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발견으로부터 진료실에서 적용되기까지 10년 그 이상 20년, 30년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전의 소위 3세대 항암제로 알려진 면역항암제도 사실은 생각보다 긴 역사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의 혼조 다스쿠 교수의 약제 개발의 기초가 된 기념비적인 발견으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1년에서야 미국에서 항암제로써 사용승인이 됐다. 위암의 발암인자로서 널리 알려진 헬리코박터균 발견도 마찬가지다. 강한 산성 환경인 위에 세균이 살고 있고, 위장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처음 발표된 해는 1979년 즈음이었다. 헬리코박터균이 발암인자라는 것이 밝혀지고, 이 균을 제거하는 약제가 사용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난 후였다.

어찌 보면 이런 검증의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매력적인 발견과 가설이 금방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발견은 우리에게 기대와 희망을 줄 수 있지만 건강과 질병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결과가 뒷받침되지 않는 약제는 진료현장에서 사용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검증의 과정은 엄격하고, 철저해야 한다. 급한 마음에 검증의 엄격함이 생략된다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효과를 맹신하고, 부작용에 대한 검증의 과정이 철저하지 않았던 탈리도마이드라는 약제가 대표적이다. 개발 당시 이 약제는 진정 혹은 수면제 용도로 사용됐다. 우수한 약효의 이면에 기형유발 가능성이 무시돼 사용됐다. 이후 입덧방지 약물로 임산부에게 널리 사용돼 1960대 초까지 전세계 46여 개국에서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났다. 과학에서 발견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과학과 의료라는 세상에는 `번갯불에 콩을 구워먹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새로운 수술법과 시술 등을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경우도 비슷하다. 효과 이외에도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론적인 배경과 그에 합당한 발견이 있더라도, 효과와 안정성은 여러 단계를 통해 체계적이며 지속적으로 검증돼야 한다. 완치의 기회가 보장된 치료법이라고 하더라도 2명 중 한 명이 사망할 수 있는 방법을 권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다.

새로운 약제나 치료법 도입에 의사들의 태도는 일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반짝이는 것을 발견하고 어떤 사람은 `금(金)일 수도 있다`고 기뻐하는 반면, 의사는 이것은 `금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칭찬은 받지 않더라도 비난을 받을 일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 의사의 일이기 때문이다. 치료는 도박이 아닌 과학이며, 안전하지 않다면 그 어떤 효과도 그저 신기루 같은 것일 뿐이다.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장관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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