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조선 중기의 수필 「효빈잡기(效嚬雜記)」에 보면 늙은 쥐의 지혜에 대한 일화가 있다. 어느 고을에 음식을 훔쳐 먹는데 도(道)가 튼 쥐 한 마리가 있었으니 쥐들 사이에서도 명망이 대단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옛날처럼 음식을 훔쳐 먹을 수 없게 됐다. 늙은 쥐는 젊은 쥐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해줬고 젊은 쥐들은 이렇게 배운 기술로 음식을 훔쳐 늙은 쥐를 봉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은 더 이상 늙은 쥐에게 배울 것이 없다며 음식을 내주지 않았다. 늙은 쥐는 그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젊은 쥐들이 찾아와서 얘기하기를"솥뚜껑 위에 큰 돌이 있어 아무리 애써도 음식을 훔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하고 묻자 늙은 쥐가 대노하며 외치길"은혜도 모르고 홀대하더니 이제 와서 괘씸하게 내게 묘안을 구하느냐"며 쫓아냈다. 당장 굶어죽게 된 젊은 쥐들이 석고대죄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늙은 쥐가 이르기를"솥뚜껑을 받치는 세 개의 발 중 하나를 파거라. 그리하면 솥이 곧 무너질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쥐들이 솥으로 달려가 그대로 하니 균형을 읽고 무너진 솥에서 음식을 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수 백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 늙은 쥐와 오늘 날의 노인의 처지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지금 우리 세대가 누리는 이 모든 풍요로움은 한 시대를 온전히 헌신한 노인들의 땀과 주름의 덕분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또한 노인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지 묻고 싶다. 사람들은 고령사회가 되면서 국가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혁신성이 낙후되며 경제는 침체된다고 걱정한다. 그리곤 딱히 해준 것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이 사회를 이끌어갈 책임과 부담을 떠넘긴다. 그런데 우리는 노인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여 이 난관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사회 발전에서 노인은 투입자원이 아닌 막대한 비용의 지출로만 여겨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우리사회는 노인의 능력과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노인과 젊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을 구분 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삼삼오오 모여 쓰레기를 줍는 것이 노인의 주된 일이 아니다. 노인도 주류사회에 속에서 그들의 몫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베테랑 어부에게 고기 잡을 기회를 줘야지 어망손질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노인의 업무능력과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는 고령인력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하기 위한 편견에 불과하다. 위스콘신대학교의 멜빈 블럼버그(Melvin Blumberg) 교수는 노인은 품질관리 등의 특정 업무 영역에서는 젊은 사람에 비해 생산성이 더 높을 뿐만 아니라 결근이 적고 업무상 사고나 재해를 당하는 비율이 낮다고 설명한다. 또한 젊은 사람이 기피하는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성실하며 양심적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사회는 노인을 활용해야 한다. 이들은 충분히 그럴 능력과 역량을 갖고 있다. 다양한 삶의 영역에서 한 평생을 바쳐 얻은 경험과 연륜은 그 어떤 교육과 훈련으로도 얻어내기 어려운 훌륭한 자원이다. 세상이 변해도 노인이 우리에게 전수해주고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울 것은 분명히 있다. 훌륭한 노인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오랜 삶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이들의 능력과 지혜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 수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노인들에게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해서도 안 된다. 일찍이 진나라 목공(穆公)은 "어른에게 자문을 구하면 잘못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노인을 무용지물로 생각하지 않고 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사회가 노인에게 어떤 의미 있는 역할을 부여하고 이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임진섭 배재대학교 실버보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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