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중국 춘추전국의 시대 말, 가장 강력했던 진(秦)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다른 6개 나라가 동맹을 맺은 것을 합종(合從)이라고 하며, 이를 깨기 위해 진나라가 맺은 동맹을 연횡(連橫)이라고 했다. 이 합종연횡의 과정에서 나온 말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이다. 멀리 있는 나라와 사귀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라는 의미다. 국제관계의 역사를 보면 가까운 나라가 사이가 좋은 경우가 드물다. 동북아에서 한일, 한중관계가 그렇고, 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관계가 그렇다.

이웃 나라인 중국은 우리에게 참으로 어려운 존재다. 지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침공을 받았고, 최근에도 적지 않은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이라는 가치의 차이와 중국의 경쟁국인 미국과 동맹 문제로 한중간에 이견이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적지 않은 무역 흑자를 안겨주는 중요한 파트너다. 그 결과 외교적 도전과 경제적 혜택 사이에서 늘 고민하고 있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불편함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중국 당국은 이달 초 자국을 방문해서 자가격리를 하고 있던 우리 국민 약 30명의 여권을 태워버렸다. 고의성 없는 실수였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다. 향후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지 않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내년이면 한중수교 30주년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이 시기의 첫 절반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중관계의 황금기였다. 중국은 한국을 존중했고 한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중국은 우리를 한 수 아래로 내려보기 시작했다. 북한과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중 전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국은 북한을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는 모습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옛말처럼 북한이 약해질 경우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는 듯하다.

또, 최근 우리 국민 사이에서 혐중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사드 경제보복 이후 바빠지고 있던 중국에 대한 국민감정은 `코로나 19` 문제로 더욱 커졌고, 우리 고유의 문화인 김치나 한복마저도 중국의 것으로 만들려는 모습에서 최악의 상황에 달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외교적, 경제적 미래에 있어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국론은 분열된 모습이다. 경제적 이익을 위해 참아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올바른 한중관계의 관행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중국은 한국의 상전 노릇을 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을 하는 한국을 그냥 두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과 올바른 외교적 관행을 만드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중국의 부당한 간섭이나 압박이 있다면 한국은 이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외교적으로 발신해야 한다. 중국과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전해야 한다. 그 출발은 `조화`를 강조하는 데 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 출범 이후 `조화세계(harmonious world)`를 강조한 바 있다. 강대국은 물론이고 주변국과 잘 지내겠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중국 정부 스스로 밝힌 바를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한국 고유의 원칙 있는 외교를 일관되게 이어갈 때 한중관계의 올바른 관행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날로 커가고 있는 중국이 우리와는 다른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의 일에 간섭해선 안된다고 할 것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주어진 환경을 숙명처럼 받아들일 경우 우리는 세계 속의 중견국이 아니라, 중국 품안의 약소국으로 전락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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