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노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지향성평가사업단장
이금노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지향성평가사업단장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다`라는 말이 있다. 새로 만든 포도주를 신축성이 없는 오래된 가죽부대에 담으면 발효로 발생하는 탄산가스로 인해 부대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혁신적이고 빠르게 변하면서 균형추로 작용하던 제도들이 더 이상 현실을 담아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오래된 가죽 부대를 붙들고 수리해서 다시 사용하려고 애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비생활의 변화를 담아낼 새로운 부대가 필요한 대표적인 영역이 전자상거래이다. 전자상거래의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업 방법이 등장하면서 기존의 제도를 개정하는 수준으로는 한계에 이르렀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01년에 3.3조원 수준이던 온라인쇼핑 거래액이 2019년에는 135조원 이상으로 집계되는 등 지난 20년 동안 연평균 20% 이상 성장했다.

이처럼 전자상거래가 일반화되면서 과거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소비자문제들이 속속 발생하고 있다. 특히, 모든 생활영역이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그 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소비자의 정보가 거대한 온라인플랫폼 또는 전자상거래 사업자로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광고나 거래 유인을 위해 활용하는 기술의 발전과 결합하면서 그 영향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70여 년 전에 조지 오웰이 그의 소설 `1984`에서 이야기한 `빅 브라더`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전자상거래 분야의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별도의 법을 제정한 이래 거래 환경을 반영하여 부분적으로 개정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전자상거래 법제를 수선하여 사용하기에는 변화된, 그리고 변화하는 현실을 담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 관련 법제의 전면적인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하나의 제도로 모든 현실의 문제를 완벽하게 예방하고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제도는 사회 구성원이 지향해야할 바람직한 좌표로 작용하기에 잘 설계된 제도는 사회의 비효율이나 불균형의 개선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아무쪼록 다양한 전자상거래 이슈를 신축성 있게 담아내어 소비자를 든든히 보호할 수 있는 부대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금노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지향성평가사업단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