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법률사무소 나래 변호사
박상준 법률사무소 나래 변호사
아시타비(我是他非),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다. 한자의 뜻 자체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것인데, 같은 상황을 두고 자신에 해당되는 경우는 관용하고, 타인이 하는 것은 비판 혹은 비난하는 태도를 비꼬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과 같은 의미다. 필자는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어떠한 사건에 대해 한쪽의 편을 들어 그를 위해 상대방과 싸우는 것이 일이다. 매번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시타비의 사전적 의미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라고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변호사로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직업적 자세라고 보인다.

절대적인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같은 사안에 대하여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에 우리편의 정당성에 대한 절대적 자신감은 일을 진행하기 위한 근본적인 원천일 수 밖에 없다. 그 올바름에 의문이 드는 순간 추진력은 상실된다. 아시타비의 입장에서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 쪽에 유리하고 상대방에게 불리한 측면을 부각시킬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일을 잘하는 변호사가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어쩌면 법조인 전체가 아시타비의 전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검사는 고소인이나 피의자가 아무리 피해나 억울함을 호소해도 여전히 스스로의 판단 하에 수사하고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판사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전제 하에 판결한다. 설령 변호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패소하거나, 검사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선고되거나, 판사의 판결이 상소심에서 번복되더라도 해당 변호사, 검사, 판사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으며 할 수도 없다.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전제에서 수행한 업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일들은 법정(法廷)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만약 변호사의 주장, 검사의 기소, 판사의 판결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 그 사건은 추후 패소, 무죄, 상소심에서의 번복 등으로 귀착되어 결국에는 상식에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법정내에서 아시타비는 당연한 것이고 그 부정적인 측면은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법정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아시타비를 고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세상의 모든 일이 얼핏 단순하고 명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어느 한쪽만을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오류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판단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아군과 적군이라는 적대적 진영논리가 개입해 자신과 타인에 대한 판단기준이 그때그때 다를 때에는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2020년 아시타비의 예로 거론되는 사례들을 보면 법조인이 관련된 경우가 많다. 현란한 수사(修辭)를 더해 그럴 듯하게 보이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라면 유능한 법조인이라고 평가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상에서는 `믿을 수 없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예전에 `필라델피아`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변호사인 주인공 톰 행크스는 유명 로펌에서 자신이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라는 이유로 해고되자 해고의 부당함을 소송을 통해 다투는 내용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여전히 일상생활에서는 혐오와 차별을 겪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사는 곳은 법정이 아닙니다. 바로 세상이죠`라는 명대사가 나왔다. 정치를 포함한 일상은 승부를 봐야 하는 전장이나 법정이 아니다. 서로 상대의 처지를 고려하고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며 건전한 상식에 기대어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아시타비는 법정에 맡겨두고 일상과 정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상식이 통용되길 기원한다. 특히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에 대하여는 활동영역이 바뀌어 유능함의 기준이 달라졌음을 자각하고 아시타비의 자세를 이제는 버리기를 바란다. 박상준 법률사무소 나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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