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함정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배지은 옮김 / 해나무 / 420쪽 / 2만 원)

상대성이론, 블랙홀, 양자역학 등 20세기 이론물리학자들은 찬란한 업적을 쌓으면서 인류가 자연과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데 앞장서 왔다. 그러나 지난 40년 동안 이들은 어떤 새로운 법칙도, 유의미한 예측도 도출하지 못했다. 그들은 끈이론, 다중우주 등 실험 불가능한 가설들을 무수히 만들었을 뿐이다. 인류 지성의 금자탑인 이론물리학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돌파구는 없는 것인가?

저자는 이론물리학자로서 자신이 쌓은 경험과 동료 과학자 등 이론물리학 석학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현대물리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고발한다. 특히 오늘날의 물리학 연구에 미학적 판단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실태를 추적했다. 그는 이론물리학자들의 저서, 강연, 논문 등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인터뷰다. 스티븐 와인버그 등 노벨 물리학상을 받거나 중요한 연구를 수행한, 이론물리학과 우주론 분야의 석학들에게 저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 연구 내용이 잘못됐다는 비판까지 서슴없이 보여준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끝없는 질문으로 상대방의 무지를 일깨웠던 것처럼 끝없는 질문을 통해 이론물리학자들의 미학적 기준의 밑바닥에 어떠한 논리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이들의 대화를 보면서 물리학자도 역시 인간에 불과하며, 감정과 편향을 가지고 있고 사회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저자는 대부분의 이론물리학자들이 수학적 아름다움이라는 주관적인 기준을 사용하는 것에 문제의식이 없으며, 이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심지어 일부 과학자들에게 과학적 방법론을 수정해 `실험적 검증`이라는 항목을 제외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 사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사회 전반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자 개인이 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동시에 그런 편향을 줄일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저자의 글에서 독자는 이론물리학에 대한 통령하고 냉소적인 비판과 함께 자신이 몸담은 학문이 제 역할을 되찾기를 바라는 이론물리학자의 애정과 헌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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