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집단문화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다른 집단과의 이해 충돌이 많지 않으며 그들의 활동이 다른 집단에 크게 나쁜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 비교적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탄생하고 유지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집단 내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이해 관계가 강하게 얽힌 이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무리를 형성하게 된다. 단순한 친목 차원을 넘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려 하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무시하거나 왜곡시켜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집단으로 만들려 한다. 이런 단계에 이르면 순수하고 건전한 집단문화가 유지되기 어렵다.
우리 주변에는 위와 같이 건전한 집단문화를 변질시키는 무리가 적지 않다. 우리는 이런 무리들을 `패거리`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이 `패거리`란 같이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다. 원래부터 이 패거리가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던 듯하다. 패거리는 `패+거리`가 합쳐진 말다. `패(牌)`란 본래 조선 시대에 번(番)을 설 때 갈아서는 한 무리를 일컫는 말로 40-50명으로 이뤄진 집단을 말한다. 현재는 부정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어떤 이해관계를 강하게 내세우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주된 관심사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판단이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오직 자신들 무리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며, 이해관계의 일치가 가장 큰 구성 요인이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와 조직 속에는 수많은 집단이 존재한다. 건강한 집단이 많이 존재하고, 서로가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조직이 살아있고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증표일 것이다. 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성격이 어떠한가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평가 또한 달라진다. 반면 건전하지 못한 패거리가 많아지는 사회나 조직은 서서히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조선시대에 동인, 서인, 남인, 북인이라 불리는 당파가 있었다. 이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목숨을 걸고 자기 당파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고, 다른 파에 대해 모진 비판과 제재를 행하기도 했다. 역사적 평가는 그 시대의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하지만, 당파는 적지 않은 부정적 이미지를 지닌 우리 역사의 민낯이기도 하다. 서울 종로구의 성균관대학교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에 비각과 그 안에 힘찬 글씨로 쓰인 비석이 있다. 영조(英祖)가 당파 싸움을 그치기를 바라며 친히 쓴 이른바 탕평비(蕩平碑)다. `周而弗比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寔小人之私意`(두루 미치어 편향되지 않음이 군자의 공적인 마음이요, 편향되고 두루 미치지 못함이 소인배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오늘날 더 되새겨 보아야 할 글귀인 듯 싶다. 나 자신이 건전한 집단의 일원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패거리의 일원은 아닌지를. 지병목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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