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성 대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정진성 대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유대인 탈무드에 `부자(富者)는 자식은 없고 상속자(相續者)만 있다`고 했다. 요즘 유명한 기업들이나 주변 일반 부자들의 상속권, 경영권 등의 재산 싸움의 기사를 보면서 탈무드의 글을 생각해 보았다.

내용을 보면 돈이란 오랜 세월 동안 금과 은, 구리와 아연, 니켈, 알루미늄 등 금속으로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차가운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은 귀한 금전을 손에 움켜쥐어 거기에 따뜻한 온기를 넣어준다. 돈은 인생과 같아서 사람 냄새가 나지 않은 돈은 돈이 아니라 헛된 욕망의 신기루일 뿐이다.

부자들은 대부분 궤짝이나 은행 금고에 모아두기 때문에 사람과의 접촉이 없어 금속만의 싸늘함을 늘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돈이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 따라 따뜻하게도 할 수 있고, 본래의 차디찬 대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두가 사람에 달려있다. 부자들은 항상 돈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금전의 싸늘함이 자신이나 가족들에게 전해져 피와 마음까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음을 모른다. 그러므로 가진 것이 많은 부자는 자식이 있어도, 그는 진정한 의미의 자식이 아니라 오직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부모형제와의 정(情)도 없으며 가족 사랑과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재산과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뿐이다. 기르던 개도 은혜를 아는데 효도는 못해도 불효는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자식 된 도리다.

재산 때문에 형제와 척지면서 밥그릇 싸움하는 행태는 인륜(人倫)을 범하고 천륜(天倫)을 거스르는 패륜(悖倫)이며 먹이 다툼 하는 금수(禽獸)와 다르지 않다.

아무리 탐욕에 눈멀어 충동을 느껴도 양심을 팔아먹는 짓과 타협해서는 절대 안 된다. 욕망에는 대가를 치러야하고 희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양심과 욕심도 분별 못하는 패륜아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마땅하다. 제 자식들까지도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하는 비운(悲運)을 맞을 것이다.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자업자득으로 인한 인과응보인 셈이다.

욕심의 허용범위를 넘어서고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찾아오는 불행이다. 평생 고생해서 벌어놓은 재산은 자신을 위해 써보지도 못하고, 자식들이 `쩐의 전쟁`으로 갈라서게 만드는 그런 부모도 불쌍하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존경한다는 말과 사랑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려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지성(知性)과 덕망(德望)을 갖추어 교양 있는 품성(品性)으로 욕심을 버리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 인정어린 마음과 헌신(獻身)적인 봉사와 희생으로 항상 베풀며 존경받을 만한 정신적 지주로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평범한 우리 가정의 아이들이 치킨다리 하나 가지고 서로 먹겠다고 다투면서 가족과 정을 느끼며 사랑을 꽃피우는 경우와 부자들이 회사 지분이나 상속문제로 다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모두다 돈이 많다고 천륜을 저버리는 것만은 아니다.

교양(敎養)을 갖춰 도리(道理)를 다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람이나 가정은 화목하게 지내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자식들에게 물질적인 유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살도록 가르쳐서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면 자부심과 보람을 갖고 훨씬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다. 쥐는 작은 동물이라서 욕심 부리고 강물을 마셔봐야 자기배 하나 가득히 밖에 더 못 마신다는 뜻의 `언서지망(偃鼠之望)`이란 사자성어는 자기에게 맞는 분수가 정해져 있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라는 말로 사람은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부리면 불행해 진다는 것이다.

얼굴 없는 돈은 행복에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행복을 약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후회 없이 살면 성공하는 것인데 부질없는 욕망과 집착은 반드시 후회를 부르고 희망마저 잃는다. 사람이라면 인간 본연(本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며 얻으려면 먼저주고 얻거든 베풀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숨 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행에 옮기는 일이다. 정진성 대전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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