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 416쪽/ 1만 5500원)

세로토닌
세로토닌
지독한 권태와 무력감에 인생을 좀먹히고 `자발적 실종자`가 되기로 결심한 사십 대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서구사회의 현재를 신랄하고 탁월하게 묘파해냈다. 46세의 주인공 플로랑클로드는 농업대학 졸업 후 몇몇 농업 관련 기업과 국가기관을 거쳐 최근까지 프랑스 농산부에서 농업전문가로 일했다. 위촉직 공무원인 그는 일반 공무원의 보수를 훌쩍 넘는 고액의 보수를 받았고, 자발적 실종자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까지는 일본인 여자 친구 유주와 함께 파리 15구의 커다란 방 두 칸짜리 아파트에 살았다. 고학력에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중산층 이상의 사회계층에 속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독한 권태와 무기력이 그의 일상에 스며든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자발적 실종자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그는 돌연 세상에서 자신의 과거 흔적을 지우기로 마음 먹고, 살던 집과 직장을 정리하고 파리 시내 호텔에 숨어든다. 투숙 기간을 일주일씩 연장해가며 호텔 생활이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그는 점차 고저의 기복이 없는 안정적이고 잠잠한 슬픔에 빠져들고, 몸을 씻는 일조차 버거워질 만큼 심각한 무기력에 사로잡힌다. 그는 이 사실을 자각하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신세대 항우울제 `캅토릭스`를 처방받는다. `행복 호르몬`이라 알려진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이 약물은 그가 비교적 정상적인 일상을 이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를 구해줄 것 같던 이 약물에는 리비도 상실과 발기부전이라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런 욕망도 느끼지 못하던 그는 성욕 감퇴 면에서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임종을 앞둔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을 돌이켜보고 그들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듯 그는 성생활의 종말 직전에 계속해서 옛 연인들을 떠올리고, 그들과의 추억과 활기 넘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을 곱씹는다.

고독 속의 중년 남성 플로랑클로드에게는 리비도 상실, 성생활의 종말이 실질적인 죽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과거에 만났던 수많은 여자를 차례로 떠올리고, 그들을 만나던 시절의 자신의 청춘과 스스로 날려버린 행복의 기회를 처절하고 아프게 반추한다.

캅토릭스 덕분에 그럭저럭 일상을 이어가던 그에게 고비가 찾아든다. 우울증 환자들에게 치명적인 크리스마스와 연말 파티 기간이 되자 그는 이 기간을 호텔 방에서 쓸쓸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노르망디 지방에서 젖소 목장을 운영하는 농업대학 동기이자 유일한 친구인 에메릭을 찾아간다. 그러나 우유 쿼터제로 목장 상황은 이십여 년 전보다 더 열악해졌고, 개인적 불행까지 더해져 에메릭은 하루하루를 술로 버텨나가는 처지가 돼 있었다. 이후 가장 친한 친구의 비극을 목도한 플로랑클로드는 존재의 위기를 느끼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해줬던 옛 여자친구 카미유를 찾아간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 불행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외로이 죽음을 맞이할 처지를 면할 인생의 마지막일 것만 같은 행복의 기회를 잡아보려 몹시 위태로운 계획을 그려나간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행복의 조건을 탐구하고, 현대인의 우울의 메커니즘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포착해냈다. 또한, 프랑스 농산부에 근무하는 주인공 외에 젖소 농장을 운영하는 인물을 등장시키며 신자유주의시대의 자유무역과 국제적 분업이 프랑스 농업 현실에 초래한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밖에도 불법 포르노 동영상, 소아성애,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동성애 혐오 등 현시대를 민감하게 관통하는 이슈들을 짚어내며, 다시 한 번 동시대의 사회적 감수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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