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 사망 놓고 진영 갈등 재연
여당, 피해자를 '피해 호소자' 호칭 눈총
공소권 없다는 이유 의혹 덮어선 안돼

송연순 편집부국장 겸 취재 1부장
송연순 편집부국장 겸 취재 1부장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고질적인 편 가르기가 사자(死者)를 통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서 출신 여성으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바로 다음 날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사자 조롱`이 벌어졌다. 친(親) 여권 진영에서는 성추행 피해 고소 여성을 향해 `여성이 벼슬이냐`라고 비난하며 심지어 `꽃뱀`에 비유하기도 했다. 반대 진영에서는 박 시장의 분향소가 차려진 서울광장 앞에서 고인을 동물에 빗대며 `몽키매직`이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바나나 퍼포먼스를 벌였다.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품격마저 사라져 버린 모습이다.

박원순 시장의 극단적인 선택을 둘러싼 이 같은 진영 갈등은 경찰이 시신이 발견되자마자 서둘러 공소권 없음을 발표하고, 서울시는 사망 확인 당일 오전 서울특별시장으로 장례를 치르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장 재직 중 사망에 따른 예우라고 설명하지만 공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것이 아닌 점은 애써 외면했다. 또한 여당 정치인들이 성추행 피해 여성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고인에 대한 일방적 미화와 추모에 나선 것이 진영 갈등의 발단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둘러싸고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지듯, 박원순 시장의 사망을 놓고 고질적인 진영 간 갈등이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여기엔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의 `조문 정치`가 기름을 부은 것 같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성추행 의혹 간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박 시장이 성추행 의혹으로 피소됐다는 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더 나아가 `박 시장 띄우기`에 몰두하는 분위기도 연출됐다. 서울시내 곳곳에 `고(故) 박원순 시장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민주당 명의의 현수막도 내걸렸다. 이런 가운데 일부 친여 네티즌들은 성추행 고소인의 신상 털기를 시작했고, 사회관계서비스망(SNS)에 확인되지도 않은 사진을 올렸다. 게다가 집권당 이해찬 대표는 여당의 성 추문 대책을 묻는 기자에게 역정을 내며 "xx자식"이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전형적인 `제 편 감싸기`이자 피해자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내년 4월 7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선에서 `고(故) 박원순 시장`이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조국 사태`가 지난 4·15 총선에 영향을 미쳤듯이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박원순 지지세력과 비판세력의 한판 대결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는 것.

이 대표는 뒤늦게 지난 15일 고(故) 박 전 서울시장의 사망 및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당 대표로서 너무 참담하고 국민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라며 직접 사과했으나 `때늦은 사과`, `사과를 위한 사과`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피해자를 지칭하는 표현도 논란이다. 이날 이 대표가 `피해자` 대신 `피해 호소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같은 날 이낙연 의원도 `피해 고소인`이라고 지칭하면서 민주당은 마치 성추행 피해자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입장에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악재는 뼈아프다. 현 정부 출범 후 안희정 충남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에 이은 여당 광역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과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정규직화 논란, `내로남불`식 부동산 대책이 잇따라 터지면서 민심이반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특히 도덕성을 최고위 가치로 내세운 민주당이 잇단 권력형 성추문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더듬어 만진당`이라는 비아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박 시장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업무 중 순직한 것과는 구별돼야 한다.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3선(選)의 서울시장 등을 지낸 박 시장의 공(功)을 깎아내려도 안되지만, 이를 내세워 성추행 피소 사실을 진상 규명 없이 그대로 묻어버리는 것도 옳지않다. 그의 공과(功過)를 냉정하게 따져 올바른 평가를 내려야 한다. 송연순 편집부국장 겸 취재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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