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희 충남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
조강희 충남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
약 25년 전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종합병원에 근무할 때 해외 학회를 갈 기회가 생겼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학회 참석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해변가 식당으로 이동할 때였다. 주말 오후 해변으로 가는 편도 2차 도로는 차로 가득차 있어 차라리 걸어가는게 나을 정도였다. 그때 매우 큰 소리의 경적(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가 고개를 돌려 차 후방을 보는데 매우 빠른 속도로 구급차가 달려오고 있는 것을 봤을 때 편도 2개 차선의 차량들이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탄 차량도 도로 우측 가장 자리로 이동해서 정차했다. 해변으로 가는 도로는 일직선 도로였기 때문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홍해에 바닷길이 열리듯 신기한 모습이었다.

약 1달 전 응급 환자를 태우고 가던 사설구급차가 택시와 접촉사고가 일어났다. 택시기사는 접촉사고 처리를 이유로 구급차를 막아섰다고 한다. 결국 환자는 다른 구급차를 타고 병원 응급실에 후송됐지만 5시간 만에 숨졌다고 한다. 급성심근경색환자의 절반 이하만 증상 발생 후 병원 도착까지의 시간이 60분 이내인 골든타임 내 치료가능 병원에 도착한다. 막힌 관상동맥을 빠른 시간 안에 재관류 해주어야 하는 치료는 사망 및 최종 성과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며, 실제로 재관류 시간(90분 이내)과 병원 내 사망률의 상관성을 분석한 연구에서 재관류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병원 내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 급성기 뇌졸중 치료도 마찬가지여서, 증상 발생 후 치료 골든타임(3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사망률과 후유증을 줄일 수 있다. 중증외상은 이 보다 휠씬 더 급한 경우이다. 심장 정지 후 1분이 지나면 뇌세포가 손상되기 시작하고, 4분이 지나면 심한 손상, 10분 이상이 지나면 회복 가능성이 없어진다.

재활의학과에서는 뇌졸중, 척수손상 및 뇌손상, 심근경색 등 중증 손상 환자가 응급실에 경유해서 수술과 중환자 처치 후에도 장애가 남아있는 경우 장기적인 재활치료를 담당한다. 재활치료 계획 수립과 예후는 초기 손상의 정도, 수술, 재관류술, 혈전제거술 등 초기 응급처치의 골든타임내 시행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궁극적인 장애예방과 장애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재활치료의 적절성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당연히 초기 골든타임내 환자의 응급치료가능 병원 이송과 빠른 응급의료서비스가 제공되어 예초부터 뇌, 척수, 심장의 손상이 최소화돼야 한다. 뇌, 척수 등 중추신경계 손상 후 생명을 보존하더라도 장애가 발생하면, 환자는 여명기간 동안 신체 운동마비, 신경인성 통증, 배뇨 장애, 욕창, 관으로 음식물을 공급받아야 삼킴장애, 심하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호흡장애, 인지 및 언어장애 등 합병증에 시달린다.

다시 1달 전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접촉사고 후 환자는 10분이 지체돼 다시 응급병원으로 출발했다 하고, 10분의 지체는 심근 경색이나 뇌졸중 환자에서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더라도 영구적인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구급차 기사, 택시기사, 가족은 환자의 응급여부, 질환별 골든타임 내 현재의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분쟁이 앞으로도 항상 발생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에는 구급차를 `긴급자동차`로 지정해서 도로의 중앙이나 좌측 부분을 통행할 수 있고, 긴급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정지하지 아니할 수 있으며, 교차로나 그 부근에서 구급차를 보면 차량의 운전자는 교차로를 피해 일시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구급차에게 양보, 우선통행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황금같은 골든타임 내에 환자 이송을 지연시킬 수 있고, 이에 대한 벌칙이 매우 비현실적으로 미약하다.

실제 응급환자를 태우고 있는지 여부는 일반인이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경적을 울리면서 달리는 구급차를 보면 비상등 켜고, 무조건 제자리에서 정차와 주변상황을 보면서 구급차에게 진로를 양보해야 하는 관습이 정착돼야 한다. 조강희 충남대 의대 재활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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