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혼란하고 암담했던 학기가 지나고, 바야흐로 종강의 시간이다. 기말시험을 대면으로 진행하는 과목들이 있어, 오랜만에 학교에 활기가 넘친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은 긴장과 불편함까지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마스크로 가린 얼굴 너머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에 대한 안부와 걱정의 인사가 오고 간다. "별일 없지요? 건강하시죠? 잘 지내셨지요?"

생각해보니, 참 오랜만에 듣는 말들이다. 혹여 마스크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반가움을 애써 전하려는 듯, 안부인사에 활기찬 고갯짓이 몇 번 더해진다. 그 고개짓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었다는, 아무 일 없이 다시 만날 줄 알았다는 자기 확신의 제스처 같은 것이었다. 문득 왜 우리는 상대방의 안부에 대해 저토록 확신에 찬 인사를 건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일 없나요"가 아니라 "별일 없지요"라는 확신, "건강한가요"가 아니라 "건강하지요"라는 믿음, "잘 지냈나요"가 아니라 "잘 지냈지요"라는 기대를 품은 말들 말이다.

연극에서 주인공이 처한 관계와 갈등의 양상을 일컬어 `주어진 상황`이라고 부른다. 작가가 구축한 세계 속 인물은 그에게 주어진 상황으로부터 촉발되는 말을 하고 행동만을 하게 되는데, 연극에서라면 어느 것 하나 이 주어진 상황을 비켜나는 말과 행동이란 있을 수 없다. 연극은 그래서 경제적으로 소설보다는 시에 가까워, 인물의 말 하나 행동 하나 허투루 낭비할 수 없다. 연극은 결국 주어진 상황 속에서 배우가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 구성된 세계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인데,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분석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이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해인 이유다.

연극의 역사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읽혔던 작품일수록 인물들에게 주어진 상황은 고약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에서 스핑크스의 질문까지 대답할 수 있었던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기 위해 떠난 고행의 길이 결국 신탁을 스스로 수행하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며 비극의 중심에 선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어떤가. 용맹한 아버지 밑에서 별 걱정 없이 커가던 햄릿은 엘시노르 성에 불어 닥친 악의 근원을 밝혀내야 하는 버거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제대로 살았다면 도스토옙스키나 쇼펜하우어가 되었을 거란 체홉의 `바냐아저씨` 속 불혹의 바냐의 회환은 또 어떤가.

연극을 본다는 것은 결국 이 고약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비극의 중심에서 눈앞에 놓인 진실조차 보지 못한 우매한 눈을 스스로 찔러 자신의 운명에 대한 책임을 짊어졌다. 햄릿은 레어티즈와의 결투를 앞두고 "죽음이 지금 오지 않으면 후에 올 것이고, 지금 온다면 후에 오지 않을 것"이라는 죽음에 대한 가장 절실한 정의를 내렸다. 절망과 회한의 한 가운데 선 바냐에게 쏘냐는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고, 서늘하나 삶에 대한 유일한 해답을 제시했었다.

이 모든 인물들의 행동과 말들이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처럼 다가온 것은, 그것이 한 치의 빗겨남 없이 주어진 상황 한 가운데서 길어 올려진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나눈, "별일 없지요"라는 확신에 찬 인사를 떠올려 봤다. 나도, 그도, 우리도 어떤 전제나 조건 없이 지금 주어진 상황의 중심에서 끄집어내 나눈 인사였다. 이토록 오랫동안 역병이 우리의 일상을 잠식할 것이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별일 없을 것이란 확신과 믿음이 바탕이 된 인사는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처한 고약한 역병의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지 선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학기 마지막 강의를 앞두고, 학생들과 "다음 학기는 학교에서 만나자"라고 인사를 나눴다. 이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의 한 가운데서 길어 올린 확신과 믿음이었다.

"모두, 별 일 없지요? 곧 만나도록 해요."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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