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서 대전대 총장
이종서 대전대 총장
스토리텔링시대라고 하지만 커피만큼 얘깃거리가 많은 것도 없는 것 같다. 건강에 좋지 않다던 우려도 많았지만 하루 3-4잔정도 마시면 오히려 좋다는 발표도 있다. 괴테는 하루에 커피를 20-30잔 마시고 83세까지, 볼테르는 40-50잔을 마시고도 84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오늘은 커피를 대학과 연관시켜 얘기해보고자 한다. 커피는 본래 에너지원으로서, 각성제로서 인식, 음용하게 됐다. 6세기경 에티오피아 계곡에서 칼디라는 목동이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고는 힘차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먹어보니 정신이 맑아지고 힘도 솟구침을 느껴 수도사들에게 가져다줬다고 한다. 이후 예멘으로 전파된 커피는 밤새 기도를 해야 하는 무슬림들에게 신의 음료로 받아들여져 커피를 경작했고, 그 수요가 아랍, 인도, 유럽, 미국 등으로 급증, 수출해 큰돈을 벌게 됐다.

유럽 최초의 커피점은 1645년 베네치아에 문을 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어 1650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문을 열었다. 이후 영국 커피하우스는 철학자, 법률가, 예술인, 사업가들이 모여 각종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하는 곳으로 인식됐다. 적은 돈으로 생활지식과 사회문화적 양식을 함양한다 해 "penny university"라 불리기도 했다.

이처럼, 커피와 대학은 초기부터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1686년 처음 문을 연 `카페 르 프로코프`에서 `Encyclopedia`가 기획됐다. 이후 이곳은 장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등 계몽 사상가들의 아지트이자, 사상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며 프랑스혁명을 촉발시키게 됐다.

미국 역시 독립을 쟁취하는데 커피가 크게 기여했다. `보스턴 차` 사건으로 미국시민들은 영국 차(Tea) 불매운동을 벌이며 커피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시민들의 독립의지를 더욱 높이게 됐다.

우리나라는 1880년대 들어서야 커피가 들어왔다. 초창기부터 독립운동 매개체가 돼 정동구락부의 반일 지식인들이 손탁호텔 레스토랑에 모여 항일운동의 불씨를 키워나가기도 했다. 이후 문화통치로 바뀌면서 명동, 종로일대에 다방들이 문을 열고 문화예술인들의 살롱으로서 이들의 사유세계를 넓히며 계몽주의적인 역할도 했다. 1960년대는 대학로 `학림다방`이 4·19혁명과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아지트 역할로 알려져 있으나, 커피 역사가 짧아 계몽주의 확산, 독립혁명, 민주화 역할로 평가받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믹스커피의 원조이자, 커피 3대 소비국인 된 우리나라에서 필자는 새로운 커피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시대가 필요로 하는 4차산업혁명의 전초기지가 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적으로 성공한 벤처기업을 얘기할 때 대학 중퇴자가 차고(garage)에서 창업을 했다고 하는데, 필자는 대학 카페가 대한민국 유니콘 기업들의 발상지가 되길 바라 본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초연결) 그들의 사고를 나누며 융합해주고(초융합) 깊게 해주는(초지능) 대학의 카페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전초기지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이를 위해 대학 내 커피하우스는 동일한 영역의 전공자들이 모이는 곳이 아닌 여러 전공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곳에 배치해 연결·융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창업동아리들이 모여 있는 곳과 메이커 스페이스에 카페를 배치해 휴식하고 담소하며 창의적 아이디어를 떠올려 에너지와 집중력을 고양토록 하는 것이다.

구글 직원의 높은 생산성 비결이 커피라는 것, 커피가 실제 생산성을 높여준다는 연구결과를 어느 블로그에서 읽고 동감한 바 있다. 필자의 대학에도 북 카페 5곳, 커피점 4곳이 있지만 이에 걸맞게 개선해 `K-커피`가 믹스커피가 아닌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문화로 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종서 대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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