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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논단] 디지털 N번방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

2020-05-25기사 편집 2020-05-25 07: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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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전창곤 대전프랑스문화원장
얼마 전부터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성착취물 동영상의 영업망이 적발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성인은 물론 미성년자들에게 협박이나 강요를 통해 외설적인 영상, 심지어는 도착적인 성착취 영상을 촬영하게 하여, 이를 n번방이라 불리는 텔레그램 메신저 등을 통해 불법 유통했다는 게 이들 범죄의 주요내용이다. 급기야 정부와 국회도 국민들의 열화 같은 분노를 의식했던지 'n번방방지법'이란 부제를 달아 미루고 미루던 기존의 성폭력처벌법을 개정한 모양이다.

피의자들도 대부분 검거되고 유사한 범죄에 대한 처벌조항도 강화되었으니, 앞으로 이러한 반인륜적인 범죄들이 근절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모두의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상황들은 필자가 항시 염려하는 대중들의 '엿보기'심리를 여전히 재현한 것 같아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텔레그램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세워주세요" 와 "텔레그램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란 청와대 청원은 각각 수백만의 국민들이 청원에 참여했다고 하고, 이러한 국민적 관심이 법안의 개정에 예외적인 신속함을 부여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사회적 이슈들이 되는 큰 사건들이 매번 이런 식의 해결구조를 취하는 모습은 이런 청원들이 때로는 정치적인 포퓰리즘이나 정제되지 않은 극단적 선동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직접민주주의 또는 민중민주주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대의민주주의는, 정치인들의 무능에 힘입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듯 보이고, 모든 중대한 국가적 사안들이 문제된 이슈당시의 군중심리에 좌지우지 되는 듯한 느낌도 사실이다.

이번 'n번방'사건만 보더라도 범인들의 신분이나 얼굴모습을 보는 게 뭐 그리도 중요했을까? 라고 자문해 본다. 열화 같은 청원열기에 '공익'을 내세워 공개한 이 범인들의 모습은 미성년자를 비롯해 모두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들이었다. 수백만이 공노한 이 범행의 당사자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인 것이다. 이 아이들이 어떻게 생겼을까? 뉘 집 아들일까? 보다는 이러한 괴물들을 생산해낸 우리 사회의 병적인 모습에 모든 사람들이 먼저 유념해야 했지 않을까? 가정, 학교, 사회 모든 곳에서 포기한 듯 보이는 아이들의 도덕, 윤리교육, 아이티나 인터넷기반 산업의 무조건적인 찬양,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이성교제까지 위축되게 만드는 듯 보이는 미투 운동의 희화화, 성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의 영상산업의 현주소들은, 조그만 죄의식도 없이 이런 괴물들이 음성적으로 암약케 하는 최적의 토양이 되었을 뿐이다.

사회는 '정치적 정당함'만을 내세워, 아이들이 갖춰야 할 도덕과 성장기에 갖춰야 할 어느 정도의 인내심을 더 이상 요구치 않은지 이미 오래이고, '인권'이란 반박할 수 없는 핑계를 내세워 우리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또는 연장자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방기하고 살아온 셈이다. 이런 '허용주의'일색의 교육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에게, 온통 유혹일 수밖에 없는 인터넷 환경에서 범죄의 영역으로 한발 내딛을 수 있음은 이 n번방 '박사'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어찌할 것인가? 인간의 욕구를 법으로 규제하는 데는 여전히 한계가 있을 터이고, 강화된 법률이 제2·제3의 박사들을 근절할 수는 없을 터이니. 그 나마 학령기 아이들의 삶이 대부분 가정과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면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의 역할이 여전히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부모들의 애정 어린 관심과 아이들의 합리적인 판단을 유도하는 학교에서의 전인적 교육이 이러한 유혹들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파제일 수밖에 없다면, 사회는 이들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시키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전창곤 프랑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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