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아비지트 배너지·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648쪽/ 2만 7000원

`일류 운동선수들은 연봉 상한이 있다고 해서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세율이 올라가면 세금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늘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들이 일을 덜 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도 복지 혜택을 많이 받게 됐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거나 덜하지 않았다.`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의 저자는 실험 기반의 접근법(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est, RCT)으로 빈곤 퇴치 연구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9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다. 두 저자는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등에 지고 살아가는 극빈곤 문제를 효과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주로 연구해 왔다. 그런데 이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목도했던 문제들은 부유한 나라가 직면한 문제들과도 매우 닮아 있었다.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킬 것인지, 점점 더 심화되는 불평등, 인공지능과 일자리 등은 오늘날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다. 이 이슈들의 핵심에는 경제학과 경제 정책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저자들은 우리가 `나쁜 경제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경제학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연구 결과를 앞세운 (실증 증거 기반의) `좋은 경제학`으로 그 해법을 찾고자 시도한다.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자 문제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늘날 이민자에 대한 혐오는 세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멕시코에서 몰려온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선동을 비롯해 이민자 문제는 서유럽 대부분 국가의 첨예한 문제가 됐다. 방글라데시 로힝야족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이는 개발도상국 일부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이민자 혐오의 기반에는 이민자가 너무 많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이민자는 전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지 않으며, 인종주의자들의 선동을 통해 이민자의 숫자가 과장되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이주와 이민이 되려 너무 적은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이주나 이민을 통해 보다 나은 일자리와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도 떠나지 않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의 재난 상황이 아닌 한 고향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중국산 제품의 대량 수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미국의 노동자들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민자가 많이 유입되면 도착국 노동자는 피해를 보게 되는가? 저자들은 쿠바의 `마리엘 보트리프트`를 비롯한 수많은 실증 근거들을 제시하며 통념과 달리 이민자가 상당히 많이 유입돼도 현지인의 고용과 임금에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미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지식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한다. 심지어 경제학자들이 빠른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고 실토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어려움에 맞서 `자명`해 보이는 것의 유혹에 저항하고, `기적의 약속`을 의심하며, 실증 근거가 무엇인지 질문하고,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으며 알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좋은 경제학만으로 우리를 구할 수는 없겠지만 좋은 경제학이 없다면 우리는 어제의 치명적인 실수를 반드시 반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박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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