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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왕관 탈환을 꿈꾸며

2020-04-09기사 편집 2020-04-09 07: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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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코로나(왕관)는 지배의 상징이다. 화려한 왕관을 쓴 바이러스가 지구공동체를 일시에 무릎 꿇렸다. 역사상 그 어느 지배자도 못했던 일이다. 미국 대통령에서 아마존 밀림의 어린이까지 전 인류공동체가 동시에 공포와 허무에 떨고 있다. 모든 제도와 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심연을 예측하기조차 힘든 어두운 그림자가 코로나 이후 시대에 드리워 있다.

로드맵을 그려본다. 이번 사태의 최대 난제는 익숙한 경험이 전개되는 낯선 환경에서 비롯된다. 일상적인 삶의 일부가 위기 앞에서 낯섬과 배신감으로 돌변했다. 암도 정복한 듯했던 의료기술, 국경을 넘어선 교류가 보여주었던 국가 간의 친밀함, 특정 지역에 투자된 대자본이 생산해 낸 풍요로움, 전 국가를 조율한다고 믿었던 국제기구들이 모두 허울 좋은 개살구 같이 느껴지는 낯선 경험이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못한 채 영원한 이별 길에 오른다. 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불안은 죽음을 둘러싼다. 그 두려움 속으로 각종 거짓뉴스가 파고들며 두려움과 불신을 극대화한다. 또한 보건과 치안의 깃발 아래 인권말살과 인종차별이 또다른 전염병처럼 확산된다. 이들의 행태는 왕관을 둘러 스스로를 위장하며 정상세포의 방어벽을 뚫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기전과 다름이 없어 보인다. 한편, 가장 나약한 사람들은 죽음보다 무서운 가난과 무관심의 거친 파도를 헤치며 먹을 것을 찾아 거리를 헤맨다.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시대에 인류가 의지할 신은 오직 '백신'이라고 말한다. 하느님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이 시대는 묻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교회의 문이 닫히고, 종교가 세상으로 들어간 자리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위로를 만난다.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위로를, 분열이 있는 곳에서 일치를,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비추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행동에서 하느님이 활동하시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고난은 결국 지나갈 것이다. 바이러스 정복 후에 전무후무한 경제위기가 오겠지만, 그 역시 언젠가 극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위기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다. 위기를 의미하는 'Crisis' 의 어원은 병의 진전을 가르는 순간을 의미한다. 우리가 직면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를 식별해야 한다.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 경험을 통해 전 인류가 보다 나은 미래의 문을 열어젖히도록 세계시민과 지성이 연대해야 한다.

'Love'의 어원은 관심 및 호의와 연결된다. 이에 비해 우리말 '사랑'은 살다, 삶 등과 같은 어원을 가진다. 이는 서로를 살리는 일이 사랑이라고, 나의 노력과 활동으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살릴 때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나의 지식과 능력을 누군가를 죽이고 나만 살기 위해 사용한다면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다.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성숙한 시민이 보여주는 상호신뢰와 협조가 단단한 둑을 구축할 때, 우리를 지배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정복하고 그 왕관을 탈환할 수 있다.

스스럼없이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 힘든 기억을 추억처럼 나눌 시간이 올까? 두려움이 앞설 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마스크를 꼼꼼히 두르고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집을 나선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고 생명과 인권이 더 굳건히 보장된 세계를 꿈꾸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날이 오면 인사조차 못하고 헤어진 형제자매를 만나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리라 희망한다.

먼 훗날 21세기 어둠을 밝힌 왕관의 진짜 주인은 어둠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항해한 '우리'였다고 웃으며 말할 날을 그려본다. 동해의 물이 마르고 백두산이 닳을 때까지 하느님이 우리를 보우하시기를 간절히, 정말 간절히 기도한다.



한광석 신부·대전가톨릭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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