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은 1980-1990년이다. 획일화되고 경직된 이성주의에 반감을 품은 자들이 체계화된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자유롭게 보고자 하는 열망이 만든 결과다. 이는 윤리적 기준도 흔들어 놓았다. 개인주의 가치관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선과 악의 구분도 모호하게 했다. 선과 악은 하나의 독립 계체가 아니라 서로 공존 상태였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이 세상은 완전히 선한 것도, 완전히 악한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므로 그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선과 악은 항상 대립적이며, 그
불교에서 인과응보의 비유를 많이 든다. 불교에서 쓰이는 말이라 어떤 분들은 그 말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사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와 사회,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불교에서 말해진 것이라고 해서 멀리할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있는 진리이기 때문이다.역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선(善)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게 마련이고, 악함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남은 재앙이 있게 마련이다."우선 밭을 예로 들자면 밭을 갈아 감자를 심었다면 반드시 감자가 나오게 되어
자식들을 다 키운 홀로 사는 80세 할아버지가 있었다. 외로웠던 할아버지는 옆집에 사는 할머니한테 새장가를 가고 싶었지만, 자식들한테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요즘엔 등이 가려워서 혼자 못자겠어." 그러자 눈치 없는 아들은 효자 손을 사왔다. 아직도 새장가를 가고 싶었던 할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얘야, 요즘엔. 추워서 혼자 못자겠다" 그러자 눈치없는 아들은 전기장판을 사왔다. 그러다가 손자가 장가를 가게 되어서, "할아버지, 제가 이번에 장가를 가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벌컥 화를 내면서, 하는 말.
대한민국 국민의 특징 중 하나는 무엇이든지 가득 차야지만 안정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9와 10 중 어떤 숫자가 마음에 드냐?"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10이라고 대답을 한다. 또한 음료수 컵에 음료수가 절반만 있는 것과 가득차 있는 것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이 또한 십중팔구는 음료수가 가득찬 컵을 고른다. 이러한 사례들을 미루어 보면 우리는 대부분 부족함, 연약함을 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우리는 완벽한 삶을 추구하고, 성공과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데, 때로는 부족함을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기독교적
인생을 살다 보면 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받은 상처는 그 유형에 따라 각각 다른 반응을 보인다. 힘든 상처지만, 잘 극복하고 이겨낸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특히 그 상처가 죄의식과 관계되어 있다면 당사자는 다양한 태도를 나타낸다.사람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넓은 지구 한 모퉁이에 아주 쉽게 몸을 숨길 수 있다. 만약 내가 숨게 된다면, 나는 어린 시절 동경했던 아르헨티나 팜파스(Pampas) 초원으로 갈 것이다. 남한 면적의 60% 정도인 이 대초원에는 나무가 전혀 없다. 농부
"불가지심(不欺自心)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마라" 성철 스님의 말씀이다. 자신의 양심은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자신이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자신은 이미 알고 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외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사람은 그 겉모습을 자신의 모습으로 착각하고야 만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도 자기 자신에게 체면을 차리느라 솔직하지 못하고 함께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기 자신과 대면했을 때는 가장 솔직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자신을 속이면 자신을 구제해 줄 진실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사람은 가진 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민이 가리지 않고, 선호하는 식품의 첫 자리는 단연 커피일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커피 소비국이 됐고, 길가에는 수많은 종류의 커피 매장이 즐비하다.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필자는 한 커피 매장에서 일행들 중 대표로 단체주문을 하게 됐다. 일행들의 주문을 메모장에 적은 후, 카운터로 다가가 자신 있게 주문을 했다. 잠시 후 커피가 모두 나오고 일행들에게 주문한 커피를 모두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자신이 주문한 것과 맞지 않다고 했다.확인해 보니, 그 친구의 말을 받아적은 메모장에는 '카모1
바울은 여러 가지 감사할 일이 많았다. 동역자들로 인해서도 감사할 일이 많았고 특별히 선교사역에 동참한 빌립보 교회 때문에도 감사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런 감사의 생활이 필요하다. 바울이 어떻게 감사하는 생활을 하였는가를 살펴보면서 우리 역시 매일 감사한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바울이 감사한 첫 번째 이유는 빌립보 교회가 사역을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당시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물질적으로 어려웠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 사역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 물질로 후원한 교회는
고대 헬라 철학자들은 수직의 한축은 하늘을 향하고 다른 한축은 지상을 향한다고 보았다. 하늘을 향한 수직의 마지막은 신의 영역이고, 땅을 향한 수직의 끝은 육의 세계이다. 수직의 상징인 하늘을 형이상학이라 말하고, 물질세계를 상징하는 땅을 형이하학을 말한다. 영적 세계인 하늘에 닿으려는 인류의 끝없는 욕구는 믿음으로 승화되었고, 절대자의 손길에 닿으려는 구도자의 학문적 노력은 신학을 낳았다.현대인들은 형이상학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절대자를 향한 수직의 세계를 포기한 인류가 물질의 세계에 함몰되어 가고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
사람이 많이 모이는 명절 때가 되면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생기는데 그중에 유독 눈에 띄고 속을 상하게 하는 것이 절제력 잃고 분노를 폭발시켜 사회규범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다. 그 분노의 뿌리를 심리적으로 분석해보면 다음의 두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네가 나의 분노를 키웠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분노에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런 심리는 피해망상증으로서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갑진년 새해 벽두에도 어김없이 이런 일이 생겼다. 명절 때 집에 방문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하였다. 중국 일본 미국 대학생들은 성공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을 우선순위로 선택하였고, 한국 대학생은 '부모의 재력'을 성공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선택하였다. '개인의 재능과 노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최고의 성공요소가 되는 사회는 어떤 사회로 바라보아야 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한국사회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민주사회 안에서 불평등이 사회 안에 내면화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갖게 되는 이들은 사회가 더 이상 지켜주지 않
세상 사람들 누구나 복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한국 사람들은 예로부터 특히 복을 좋아한다. 새해가 되어 인사할 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할 정도이며, 생활 가까이에서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 베개, 이불 등 생활 전반적인 모든 것들에 복(福)자를 새겨 놓는다. 이러한 바람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복을 생활 깊이 추구하다보니 '기복주의'와 같은 잘못된 태도로 치우치게 되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이러한 현실은 믿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너무나 쉽게 하는 말 가운데 "예수 믿
사람이 가진 힘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잘 사용하면 많은 사람에게 평화와 기쁨을 가져다주지만,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다른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힘을 권력이라고 표현한다. 역사 이래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가 세상의 지배자가 됐다. 어쩌면 권력의 중심에 있던 자들은 존경의 대상이었고, 그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역사적 인물로 후대에 귀감이 되거나 유명한 인물로 이름을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비범한 노력으로 권력을
미래가 현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지 말하기 전에 작년의 괴기스러운 사건 하나를 말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사건은 서울 신림역 근방에서 일어난 흉기 살해 사건으로 지난해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1명이 무고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고 3명이 상해를 입었으며, 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과 방송을 통해 놀랬을 국민을 생각하면 그 피해의 정도는 추산할 수 없는 정도일 것이다. 사건 이후 범죄적 분노의 성향을 갖고 있던 자들이 가세, 국내 여기저기에서 '살인 예고'가 쏟아져 많은 사람이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다. 실제 난동을 부리는 사건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고지전(2011)'를 보면 상황에 맞지 않는 판단을 하는 중대장과 그 명령을 따라야 하는 부대원들의 모습이 나온다. 고지 300미터 지점에 대공포를 설치하려는 중대장의 명령은 대담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무모하고 무지한 명령이었다. 당시 전황은 대공포를 설치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별로 없지만, 고지를 뺏기면 대공포도 적군의 손에 넘어가게 되어 더 큰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우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그 명령은 과연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지향이었을까?상황에 맞지 않는 지휘관의 명령은 휴전시에는 괜찮을지도 모르
국어사전에 있는 헌신의 뜻은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다. 즉, '자신의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힘을 다 쏟아부음'을 헌신이라고 말한다.또 힘을 다 쏟는 것이 '헌신'이다. 힘을 남겨 놓는다면 그것은 헌신이 아니다. 적당히 하고, 내 마음이 원하는 정도만 하는 것은 절대 헌신이 될 수 없다.자신의 힘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까지 쏟아 내는 것을 우리는 신앙적인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성경에는 '룻'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룻은 예수님의 족보
갑자기 불어닥친 눈발과 겨울의 바람은 심히 아픈 바람 같다. "이게 진짜 겨울이구나" 생각하며 어렸을 때 눈맞고 바람을 헤치며 그렇게 추웠던 등교길이 생각난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겨울 스포츠다 설원이다, 예쁜 눈이다 하며 겨울을 즐기지만 서민들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은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시리게 하는 때이다. 그러니 겨울의 추위는 인생에서 겪는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고난의 종류와 깊이가 다르긴 하겠지만 이 땅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며 살아간다. 돌아보면 경제적인 일이나 건강의 악화나 인간
고등학교 시절 2500원짜리 이발소가 있었다. 학생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었고, 나도 그곳을 애용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나는 이유는 그것이 싼 곳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저렴한 곳에서 머리를 깎을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 먼 거리이긴 했지만 방문했다.그 이발소 아저씨는 지금 잘 계실까. 어느덧 노인이 되어 노년의 삶을 즐기고 계시리라. 지금의 내가 수백 배의 돈을 낸다고 해도 그때의 기쁨이 주어질지는 잘 모르겠다. 기쁨과 추억은 비싼 값을 치르고서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돌이킬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어야 주어지기 때문
예전에는 겨울철에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초겨울에 김치를 많이 담가서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저장하는 풍습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그 일을 '김장'이라고 한다.지금이야 김치냉장고가 있어서 보관하는 것이 자유롭지만 예전에는 하나하나가 중요했다. 김장할 시기도 중요하고, 많은 양의 김치를 담을 김장독도 중요하고, 김장독의 김치를 맛있게 먹고 보관하기 위한 커다란 구덩이도 중요했다. 때가 되어 김치를 담그면 독에 넣어야 하고 땅에 묻고 볏집으로 지붕을 세운 김치광을 만들고 나면 일 년의 가장 중요한 행사인 김장이 끝이 난다.
2017년 어느 날, 필자는 브라질 아마존 어느 부둣가에 위치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강가에서 아이들 대여섯 명이 다이빙과 수영을 하며 서로 웃고 즐기고 있었고, 식당 앞 의자에는 그들의 부모가 여유로이 캔맥주를 마셨다. 그들과 담소를 나누며 소박하면서도 유쾌한 삶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다음날 어제 수영을 하던 아이 한 명이 그 강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속 덩굴이 많은 아마존강 지역의 특성상 수영을 하다가 그만 발이 덩굴줄기에 걸렸다는 것이다. 어제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가 오늘 그 자리에 없는 것도 충격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