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배 논설위원
나병배 논설위원
여야 정치권의 비례의석 쟁탈전이 가열되고 있다. 득표율을 더 끌어올리는 정당이 과점하는 구조여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비례의석은 정당득표율에 대응한 배분이 원칙이다. 적어도 4년 전 20대 총선 때까지는 그렇게 작동돼 왔다. 이번 4·15 총선 비례의석 경쟁은 다르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이라는 사정 변경이 생긴 게 결정적이다. 이름 하여 불완전연동제로서의 준연동제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 준연동제라는 것을 처음 경험한다. 자신들이 룰을 바꾸고 의석 배분 방식을 변화시켜놓고 내심 떨고 있는지 모른다. 단순 구도화하면 비례의석 밥그릇 다툼이다. 나머지 지역구 의석은 소선거구 단순 다수대표제 그대로이며 비례의석 증감은 없다. 그런데 지금 각당은 사활적으로 두뇌싸움을 서슴지 않고 있다. 어떻게든 한석이라도 더 건져보겠다는 몸부림으로 읽히며, 전선의 축은 2개 거대 정당 사이에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례의석을 둘러싼 이상 과열 현상은 예견된 사태다. 그 발화점은 47개 의석 배분방식의 이원화에 있다 할 수 있다.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가르되 준연동제 원리를 가미시키면서 산식이 복잡해졌다. 47석 중 17석은 순수하게 정당득표율에 의거해 의석을 나누게 되고 이른바 캡을 씌운 30석은 전체 300석에 대해 A당의 정당득표율을 곱해 의석수를 산출한 다음, 캡 비례의석 획득 분을 뺀 나머지 의석을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다만 준연동제인 만큼 실제 반영률은 50%로 묶어 놓는 장치는 해두었다.

준연동형 비례의석 30개가 화근을 자초한 것은 역설이다. 규칙은 까다로워졌지만 뜻밖에 허점이 노출되어서다. 거대 양당을 필두로 비례전용정당이 우후준순 난립하는 암초를 만난 것은 그래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비례의석 밭을 온통 거대 정당들이 양분할 듯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소수 정파의 원내진입을 수월케 한다는 30석 캡 제도의 본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점에서 `캡 비례제`의 역습이라 부를 만하다.

비례제 반작용 여파로 모정당을 가진 복수의 위성정당이 출현했는가 하면, 속성이 유사한 비례용정당들도 결사됐다. 어떻든 본질은 비례의석을 더 가져가기 위한 것이지만 비례의석 밭에서 `공유지 비극`이 잉태됐다. 새삼스럽게 정치생태계의 비정을 느껴진다. 대화와 타협을 지향하는 정치에서 당리 우선 논리는 여전히 강고하다. 의석 배분의 비례성 원칙에서 보면 준연동제의 타당성과 합목적성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비례의석이라는 공유자원을 목전에 두게 되자 표변하고 만다.

주요 정당들은 이미 비례의석 울타리에 발을 들인 형국이다. 전체 파이는 정해져 있어 필시 적자생존 약육강식 논리가 득세할 게 자명하다. 몸집 큰 정당들이 휘젓는 힘이 커질수록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험한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울타리 안에선 따로 정해진 룰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도의는커녕 상위 포식자 중심주의 횡포가 거칠어지는 상황이 전개되기 딱 좋은 환경이다.

이런 전횡과도 같은 행태가 거북하지만 현행 비례선거제하에선 손을 쓸 도리가 없다. 이미 총선 레이스가 시작됐고 지역구 비례대표 부문별 출전 선수 명단도 거의 짜여져 가는 단계다. 한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면 문제의 캡 비례제는 이번 총선을 치르는 것으로써 내구성이 소진될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생경한 비례선거제 도입으로 총선 무대에서 펼쳐지는 비례당 블랙코미디물 폭주는 그 자체로 고역이다.

각당은 비례의석을 더 차지하기 위해 역대급 고지전 진지전 채비를 착착 진행중이다. 정략적 사고의 영역에서 가능한 온갖 편법의 향연, 허구적 정치수사에 상징 이미지 마케팅의 결합 등이 널을 뛴다. 주권자 지성으로 이 비례제 난맥상 심판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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