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프랑스 출장 중이다. 항공권이며 공연관람 티켓 예약은 물론이고 만나야 할 사람들과의 사전 약속까지, 몇 달 전부터 차근차근 출장 준비를 해나가던 차에 지난해 12월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얘기가 터져 나왔다. 그때는 막상 우리 이야기가 아닌 듯했으나 새해 들어 그 심각성에 관한 국내언론 기사들은 과연 이 상황에 출장을 가는 것이 옳은지를 고민하게 했다. 어린 두 딸을 데리고 떠나는 프랑스 출장이었으므로, 주변 분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아시아계 혐오가 유럽 사회로 번질 수 있음을 함께 염려해줬다. 출장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이로 인한 유럽사회 전반의 제노포비아((Xenophobia, 외국인혐오)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이 사실이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 이보 반 호프의 `엘렉트라/오레스테스`를 보러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을 방문했다. 국내언론을 통해 유럽 사회 전반에 퍼진 아시아계 혐오의 근원지로 프랑스가 지목됐고, 학교나 상점에서 아시아계 프랑스인들이 겪은 일화들이 공개됐던 터라, 숙소에서 나와 극장까지 걸어가는 길 내내 어깨를 움츠리고 걸었다. 그러나 마스크로 얼굴을 동여매고 쉽게 꺼내 쓸 수 있도록 알코올 세정제를 주머니에 넣어 도착한 프랑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국내언론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었다.

`혹시나 극장에서 내 옆에 앉은 관객이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공연 티켓을 취소할까? 어쩌면 극장 입구에서부터 입장을 거부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으나 극장은 평온했고, 프랑스 관객들은 마스크를 하고 앉은 동양 관객들에게 별달리 신경 쓰지 않았다. 공연프로그램을 들고 자리를 안내하고 있던 극장 관계자는 내게 티켓을 보여주면 자리를 알려주겠다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잔뜩 움츠려 경직됐던 어깨가 녹았고, 나도 프랑스 관객과 보조를 맞춰 마스크를 벗고 온전히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포비아(phobia)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반응의 일종이며, 개인의 실제적인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특징이 있다. 공포나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 의학적 치료가 전제돼야 하는 이유는 혐오와 공포라는 감정이 지극히 개인적 영역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때때로 혐오는 특정 사회와 문화 안에 형성된 고착화된 공동의 감정이기도 하다. 공동의 감정은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을 주체화하면서 생기는 것으로, 집단 내 구성원들을 이해하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으나 집단을 차별화하고 다른 집단과 투쟁하기 위해 의식의 통일을 목적으로 조장, 확대, 왜곡되기도 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혐오와 두려움의 공동감정은 말할 것도 없이 후자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생경로를 추적해 들어가며, 우리는 경계해야 할 혐오와 두려움의 공동감정을 확대, 왜곡, 조장하는 과정에 동참했다. 중국인 입국에 대한 전면금지 청원이나, 우한교민들 격리시설 선정과정에서 지역민들의 반발은 감정적으로는 분명 이해할 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청원은 줄어들었고, 교민들의 격리는 별다른 반발 없이 진행 중이다. 이는 혐오와 두려움으로서의 공동감정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형태로 야기된 사회적 문제를 이미 경험했던바, 우리 사회가 이 공동의 감정에 대한 분별의 힘을 스스로 발동시킬 수도 있게 됐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일 터이다.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을 방문한 다음 날, 출장을 따라온 두 딸과 파리의 센강을 산책했다. 센강을 배경으로 두 딸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있으려니 감색 자켓을 멋지게 차려 입은 40대 중년 파리지앵이 다가와 "가족사진을 찍어줄까요?"라고 물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리가 직접 다가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지는 말자고,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부탁일 수도 있겠다는 내 생각이 자칫 부끄러워졌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기사가 연신 쏟아지는 가운데, 이 중년의 파리지앵이 내게 보여준 작은 배려는 새삼 프랑스라고 하는 국가와 시민들의 정신적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였다.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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