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새학기 준비를 위해 문제집이 필요하다는 두 딸을 데리고 광화문에 있는 대형 서점에 들렀다. 평상시 20분 만에 도착할 서점을 한 시간이 걸려 도착했다. "무슨 차가 이렇게 많지?"라고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더니, 올해 초등학생 1학년인 둘째 아이가 "오늘도 태극기 부대가 출동했나 봐"라고 말했다. 순간, `태극기부대`라고 내뱉은 말 안에는 아이의 감정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공공의 장소인 광화문을 주말마다 막고 서서 책 사러 가는 아이들의 바쁜 발걸음을 몇 번이고 지체했던 과거의 시간들에 대한 야속함 혹은 짜증 같은 것들이 배어 나온 것이다. 나는 딸에게 광화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의 정체를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었는데, 미디어 노출이 적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 태극기부대는 아마도 그다지 좋지 않은 이미지로 각인된 모양이다. 아이들의 감정이 이해 되고 나 또한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순간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모든 나이든 자들에 대해 가질 수도 있는 혐오 같은 것들 말이다.

며칠이 지나, 나는 내가 일하는 동네에서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었던 두 여성 연극인들의 부고를 들었다. 러시아 소브리멘닉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50년간 러시아현대연극을 이끈 갈리나 볼첵과 한국 저널리즘 연극비평의 장을 연 연극평론가 구히서 선생의 부고였다. 갈리나 볼첵은 향년 87세로 스탈린 사후 혼란한 러시아사회를 연극을 통해 분석하고 대중들과의 공감의 자리를 마련한 러시아연극의 스승이며, 구히서 선생은 93년 히서연극상을 제정해 최근까지 후배연극인들을 격려해주셨던 문화계의 어른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볼첵의 연극을 보면서 러시아에서 오랜 유학생활을 했고, 구히서 선생과의 인연은 우리 극단에서 만든 공연을 보러 와달라고 부탁했던 정도였다.

여든이 넘은 두 여성연극인들의 부고가 특별했던 것은 기댈 언덕 같은 어르신들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들의 죽음을 대하는 젊은 창작인들의 경의의 마음 때문이었다. 소브리멘닉 극장에서 열린 갈리나 볼첵의 장례식에는 관객과 연극인들 1000여 명이 참석했고 볼첵의 50년 연극인생을 정리하며 그녀가 누워있던 관을 향해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하게, 1월 초에 있었던 구히서 선생님의 발인에는 연출가, 배우, 평론가, 기획자 할 것 없이 많은 연극계 후배들이 참석해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함께 했고 3일간의 장례에는 연극계 후배들이 상주를 자처했다고 한다. 연극의 지형은 달랐을지라도 두 연극계 어른들의 지나온 삶의 궤적이 눈에 보이듯 또렷해 며칠 숙연한 마음으로 두 선생의 기사를 찾아서 읽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가족 SNS에 나의 아버지가 올린 사진에는 아무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퇴임하시고 원주에서 혼자 계시는 아버지는 적적하던 차에 친구 네댓 분들과 서울에 올라와 광화문에 들렀고, 태극기를 들고 찍은 사진을 밴드에 올렸던 모양이다. 밴드에 있는 열 명 남짓한 가족들은 `좋아요`를 누르지 않음으로써, 적지 않은 걱정과 함께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었다.

1시간이 걸려 서점에 도착한 그 날, 나는 서점 화장실에 들른 할아버지들을 목격했다. "사진을 찍고 있던 내 부친을 보고 혐오의 감정을 드러냈던 사람들도 있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시선을 애써 다른 쪽으로 돌렸다. 모든 정치적인 실리와 목적을 떠나 우리 사회는 이 `혐오`의 문제를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여전히 방식이 아득하다. 우리는 "왜 존경받는 어른이 되지 못하느냐"는 푸념 섞인 원망 따위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나와 나의 아버지의 문제이므로,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이 혐오의 근원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김원석 청운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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