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처리 놓고 여야 대립 최고조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송충원 서울지사 부국장
숫자는 묘한 힘을 지닌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똑같은 하루 24시간이나, 느낌은 전혀 다르다. 특히 이번 주의 경우 주중 이틀은 2019년이고 나머지 이틀은 2020년이어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말 그대로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의미가 극대화된 한 주다.

연말연시에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동시에 남에게는 너그러워지기 마련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난 일들을 곱씹어보면 당시에는 생각치 못했던 본인의 `실수`와 `틀림`이 문득 떠오르면서 후회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가정과 직장은 물론 일반적인 사회 관계 속에서도 사과 또는 덕담이 유독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떠한 원칙에도 예외는 있나보다. 정치권은 연말이면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 그것도 매년 그 정도가 심해진다. 올해 역시 `최악`을 경신했다는 평가다. 2018년 마지막 날 여야는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놓고 정면출동했다.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 운영위원회에 나왔는데, 민정수석 임명이후 첫 국회 출석이었고, 여야의 공방은 자정을 넘겨 올해 1월 1일까지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올해는 더 가관이다.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선거법과 공수처법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여야의 행태는 누가 더 비호감인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다. 군소야당과 함께 4+1 협의체를 결성한 민주당은 연말 국회에서 마무리하려했던 모든 것을 다 이뤄냈지만, 제1야당을 `패싱`한 채 강행처리함으로써 극한 대치 정국을 가속화시켰다.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하자는 여야의 요청에 아예 비례대표제를 없애고 지역구를 270석으로 하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고, 공수처 설치도 강한 반대 입장만을 고수해온 끝에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2019년 마지막 날 `의원직 총사퇴`라는 마지막 수를 던지고야 말았다.

두 법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해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광장의 목소리를 제도권 내에서 수렴해 반영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정치 본연의 임무를 여야 모두 망각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정치가 당리당략적 정쟁에만 매몰된 것이다.

공자는 정치에 대해 `정자정야(政者正也)`라며 천하를 올바르게 하고 바로잡는 것이라고 규정했지만, 실제 현실은 정반대라는 것을 주권자인 국민들도 다 안다. 오죽하면 그리스 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정치를 하는 자는 학식이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이 아니다. 불학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라고 꼬집었을까 싶다.

교수신문에서 `상대방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뜻을 지닌 공명지조(共命之鳥)를 `2019 올해의 사자성어` 1위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목숨을 공유하는 새라는 뜻을 가진 상상속의 새 공명조(共命鳥)는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자신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공멸하게 된다는 운명공동체를 의미한다. 여야가 상생이 아닌 독자생존을 위한 극단으로 치닫을 경우 그 끝은 정치의 몰락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일 수밖에 없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국회 파행의 근본적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반대하는 이들 역시 정부가 책임져야 할 국민이고, 국정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일지라도 협치를 통해 품어야 할 국정 파트너다. 대통령제에서의 청와대는 절대적 권한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만큼, 국정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 또한 마땅하다.

창덕궁 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옥류천(玉流川) 계곡은 조선시대 국왕만의 신성한 공간이었다. 조선왕조 최고의 개혁적 군주로 평가받는 정조는 신하들에게 이 곳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당파가 다른 신하들과 함께 이 곳을 산책하면서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을 하나로 모으고, 자신의 정치구상과 개혁정책을 충분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 무엇도 얻어낼 수 없는 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작금의 국내외적 위기상황을 극복해 내려면 새해엔 정조의 리더십이 절실해 보인다. 송충원 서울지사 정치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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