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우 공주대 교수
박순우 공주대 교수
연말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연도를 준비하는 분주한 시기다. 개인적으로는 체중을 감량하겠다는, 독서량을 지난해의 두 배로 늘리겠다는 연초의 계획을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적으로는 남북문제, 외교문제, 국내의 정치적 갈등 등 말 그대로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해였다. 얼마 전, 교수 신문은 2019년 우리 사회를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사자성어로 정리했다. 이는 머리가 두 개인 새에 대한 불교경전 속 설화라고 한다. 한 머리가 항상 몸에 좋은 열매를 챙겨 먹는 것을 질투한 나머지 다른 한 머리가 독이든 열매를 몰래 먹은 결과 두 머리 모두 죽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지난 1년 동안 화합과 통합보다는 갈등과 대립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다. 포용의 공동체를 향해 출발했던 연초의 계획이 실패로 끝나가는 느낌이다. 영어에도 "Plans are there to be broken, problems are there to be solved" 라는 표현이 있는 것을 보면, 계획을 달성하기란 동서를 막론하고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렇더라도 새해를 계획 없이 시작할 수는 없다. 모두가 한번 쯤을 들어봤을 공자(孔子)의 말씀처럼 "일생의 계획은 어려서 세우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세우며,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워야 한다. 어릴 때 배우지 아니하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봄철에 밭을 갈지 않으면 가을철에 바랄 것이 없고,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 할 일이 없다". 계획이 없으면 원하는 결과를 성취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관건은 `어떤 계획을 세울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적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결정한 계획은 자신의 역량에 대한 냉철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화합의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사회적 계획은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흔히 한 사회가 건강하려면 진보와 보수, 중도의 집단구성 비율이 30: 30: 40이어야 한다고 일컫는다. 하지만 이의 이면에는 자기와 생각이 다른 집단을 배척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새가 나려면 좌우의 날개가 모두 필요하다는 표현과 동일한 맥락이다. 가까운 과거에, 한 전임 대통령은 소통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법으로 통제하려고 했다. 그 결과는 민주주의의 퇴보였다.

필자는 오래전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 머리말에 등장하는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는 구절이다. 지식이 있어야 사물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구절을 응용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자문자답의 형식이지만,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새로운 것, 미지의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은 던지는 것은 사물이나 현상을 이해하는 지식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지적 경각심에 둔감해 있는 것 같다. 사회나 본인과 다른 생각을 갖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잃고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것은 자신을 판단하는데 있어서 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데도 장애가 된다. 이는 더 나아가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하거나 적대시하는 양상으로 확대된다. 2019년 우리 사회가 `공명지조`로 표현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는 않는가?

호기심과 지적 경각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느 한 계획의 성취여부를 떠나 자신을 발전시키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1년 후 이맘때 쯤 우리는 다시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할 것이다. 그때는 오늘처럼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다는 개인적 아쉬움으로부터, 무겁고 어두운 단어로 사회를 평가해야 하는 심적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있기를 기대한다. 박순우 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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